케미칼·칠성·하이마트 잇단 자금 조달
단기 부채를 장기 채권으로 ‘차환’ 주력
칠성 임원들은 자사주 매입으로 ‘책임 경영’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6 유통산업 전망'에 따르면 올해 유통시장 성장률은 단 0.6%다. 사실상 성장이 멈춘 ‘제로 성장’ 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유통 공룡 롯데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외형 확장과 점포 확대 대신 현금을 확보하고 재무 성벽을 높게 쌓는 ‘재무 방어’가 새로운 생존 카드로 부상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2일부터 28일 사이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잇따라 증권발행실적보고서를 제출하며 대규모 자금 조달을 마무리했다. 조달 규모는 롯데케미칼 4000억 원, 롯데칠성음료 2300억 원, 롯데하이마트 600억 원으로 일주일 새 확보한 실탄만 총 6900억 원에 달한다.
이번 자금 조달의 핵심은 ‘선제적 유동성 확보’와 ‘질적 개선’이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당장 갚아야 할 단기 부채를 만기가 긴 장기 채권으로 바꾸는 ‘차환’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공시된 자금의 세부 사용 목적을 분석한 결과, 조달 금액의 대부분이 기존 채무를 상환하는 데 배정되었다. 롯데케미칼의 4000억 원은 조달 자금 전액이 채무상환자금으로 사용된다. 업황 부진에 대비해 은행 보증(AAA)까지 동원하며 대규모 자금을 확보, 기존 차입금을 상환함으로써 재무 안정성을 꾀했다.
롯데칠성음료의 2300억 원 중 약 1800억 원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상환에 쓰이며, 나머지 500억 원은 원재료 구매 등 운영자금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칠성은 상대적으로 우수한 신용도를 바탕으로 저금리 조달에 성공하며 실익을 챙겼다.
롯데하이마트의 600억원은 전액 채무상환자금이다. 4.3~4.6%대의 다소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도 자금을 조달한 이유는 단기 차입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재무적 여유를 바탕으로 점포 효율화와 ‘홈 토탈 케어’ 등 신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조달 과정에서의 온도 차는 뚜렷했다. 롯데칠성은 흥행에 성공하며 저리로 자금을 모았으나, 하이마트는 시장의 엄중한 평가 속에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치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비용 발생이 아니라 ‘재무적 다이어트’를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분석된다.
내부 결속력도 확인됐다. 28일 공시된 최대주주 소유주식 변동 신고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 임원들이 자사주를 장내 매수하며 특수관계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저성장 공포 속에서도 경영진이 직접 주식을 사들임으로써 주가 방어와 책임 경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시장에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이제 매출액이 얼마인지보다 얼마나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하고 고정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느냐가 기업의 진짜 실력이 되는 ‘뉴 노멀’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롯데그룹의 이번 공시 릴레이는 성장의 가속 페달보다 브레이크의 성능을 점검하며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대기업의 생존 전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