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B “30~88조 외환 시장 영향”
달러 수요 줄여 환율 상승 압력 완화 기대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환헤지 비율을 확대하면서 외환시장에 수십조원 규모의 달러 공급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환율이 1500원대를 넘나드는 변동성 장세에서 연기금이 사실상 ‘고환율 소방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전날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기존 10%에서 15%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전술적 환헤지(±5%)를 더하면 최대 20%까지 환헤지가 가능해졌다. 이는 기존보다 환율 변동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안정성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는 추가 환헤지 확대분을 5~10%포인트로 보고, 약 300억~600억달러 규모의 시장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한화 기준 약 44조원에서 88조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실제 환헤지 비율은 약 3~5%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여기서 5~10%포인트 확대하는 이번 조치는 외환시장에 안정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일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역시 비슷한 시각을 내놨다. MUFG는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15%로 높일 경우 약 30조원 규모의 외환시장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도 “5% 비중은 대략 300억달러에 해당하는 규모로, 외환시장에서 환율 하락 기대를 키우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기관들이 공통적으로 ‘수십조원대 영향’을 언급하는 셈이다.
국민연금의 투자 규모를 고려하면 잠재 영향력은 더 커진다. 올해 1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해외주식은 569조9000억원, 해외채권은 99조7000억원으로 총 669조원 수준이다. 여기에 최대 환헤지 비율을 단순 적용하면 약 134조원 규모까지 환헤지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 실제 집행 속도와 시장 여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환헤지 확대가 ‘달러 공급 효과’로 이어지는 이유는 구조에 있다. 환헤지는 달러를 실제로 즉시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환이나 외환스왑 거래를 통해 ‘미래에 달러를 팔겠다’는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달러 매도 포지션이 형성되며 시장에서는 이를 달러 공급으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위해 달러를 매입하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수요가 늘어나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환헤지를 통해 해당 달러를 되팔기로 약정하면 달러 매도 물량이 함께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달러 매수와 매도가 상쇄되면서 순수 외화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이번 조치는 시점상 의미가 크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환노출을 유지하면 대규모 달러 매수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 반면 환헤지를 확대하면 이러한 수요가 일부 억제되며 외환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기간에 대규모로 집행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헤지 수단이 제한적인 데다, 과도한 헤지 확대는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스왑 등 주요 수단을 과도하게 활용할 경우 시장 가격 왜곡이나 외환보유액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