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업은 오랫동안 디지털 전환이 더딘 산업으로 지목돼 왔다. CAD(컴퓨터지원설계)부터 BIM(빌딩정보모델링), 스마트건설 기술이 차례로 도입됐지만 현장 중심의 업무 관행과 복잡한 하도급 구조 탓에 기술 확산 속도는 기대에 못 미쳤다. 다만 2026년 들어 본격화하는 인공지능(AI) 전환(AX)은 이전과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기술 도입이 개별 업무 효율화에 무게를 뒀다면 최근 AI는 산업 전반의 운영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설 기술의 디지털 전환은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 보급과 함께 본격화됐다. 수작업 설계 방식이 디지털로 전환되던 시기다. 당시 1990년대 후반 정부와 업계는 건설 정보를 전산망으로 교환·공유하는 건설CALS 체계 도입에 나서며 산업 전반의 정보화를 추진했다. 종이 문서가 디지털 데이터로 치환되기 시작한 초기 디지털 전환기였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설계 단계에 머물렀을 뿐 현장 운영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CAD 도입은 ‘도면의 디지털화’라는 기술적 성취는 이뤘으나, 설계·시공·유지관리 간 정보 공유는 여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정보가 설계·시공·유지관리 전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수준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BIM이 등장하며 기대를 모았다. 설계부터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의 정보를 3차원 모델 안에 공정과 물량, 설비 정보를 함께 담아 협업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 공공 발주를 중심으로 도입 논의가 활발했으나 전면 확산까지는 되지 못했다. 고가의 소프트웨어 도입 비용과 전문 인력 수급 불균형이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원도급사와 다수의 하도급사가 얽힌 복잡한 계약 구조상 정보를 투입하고 공유하는 유인책이 부족했다는 점이 결정적 한계로 작용했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대응이 구체화된 것은 2018년 국토교통부가 ‘스마트 건설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드론 측량, 사물인터넷(IoT) 기반 안전 관리, 자동화 장비 등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2020년 ‘건축 BIM 활성화 로드맵’과 2022년 ‘S-Construction 2030’이 잇따라 발표되며 건설 전 과정의 디지털화·자동화는 국가적 과제로 확정됐다. 2023년 출범한 민관 합동 ‘스마트건설 얼라이언스’는 민간 주축 협의체로서 표준 제정, 선도 프로젝트 선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건설업의 기술 혁신 속도가 지연된 원인은 특유의 ‘일회성(One-off)’ 구조에 기인한다. 규격화된 제품을 반복 생산하는 제조업과 달리 건설은 현장마다 지형, 기후, 공법, 참여 인력이 상이하다. 특정 현장에서 검증된 기술이라도 타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기술 표준화와 확산의 장애물로 작용해 왔다.
현장 인력의 보수적인 업무 방식도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이었다. 수십 년간 축적된 현장 관리자의 경험과 직관을 데이터보다 신뢰하는 도제식 문화가 공고했기 때문이다. 이는 낮은 기술 투자로 이어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건설업의 디지털화 수준은 약 6%로, 제조업(28%)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 역시 여전히 1% 안팎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건설사들이 AI에 주목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축적된 현장 정보를 연결·활용하려는 시도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디지털 도구가 도면과 문서의 전산화에 머물렀다면 최근 AI는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쌓인 비정형 데이터를 분류·검색·요약해 현장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부서와 현장 별로 흩어져 있던 시공 기록과 노하우를 조직 차원의 데이터 자산으로 축적하려는 시도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유사 공사의 성공·실패 사례를 빠르게 찾아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장 의존도가 높은 건설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실제 현장 적용 사례도 하나둘 늘고 있다. 대우건설은 올해 각 본부에 흩어진 성공·실패 사례를 통합해 자연어 질의로 검색할 수 있는 ‘LL AI Agent’를 소개했고, 방대한 입찰안내서와 해외 프로젝트 계약 문서를 분석하는 ‘바로답 AI’도 현장에 보급해 활용 중이다. GS건설 역시 5000장이 넘는 시공기준과 시방서를 AI로 분석해 필요한 기준을 즉시 찾을 수 있는 ‘자이북’을 일부 현장에 적용하며 고도화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표준 내역과 과거 계약 단가를 데이터베이스화한 ‘AI 공사 견적 모델’을 통해 비정형 견적 내역을 비교·검토하던 기존 방식을 체계화하고 견적 단가의 적정성을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들의 AI 도입은 트렌드 대응 성격도 있지만, 결국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적용처를 찾으려는 과정”이라며 “이미 데이터화 된 자료는 AI로 탐색·정리·요약하는 데 활용할 수 있지만, 개인이 쌓아온 노하우나 암묵지(경험과 학습을 통해 체화된 지식)까지 바로 데이터베이스화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건설업에 맞는 활용처를 단계적으로 찾아가면서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