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와는 다른 새 경제안보 플랫폼
적극적 협상전략 마련해 흐름 타야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어 핵심광물이 글로벌 패권 경쟁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무역 질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추진 중인 복수국 간 핵심광물 통상협정(Plurilateral Agreement on Trade in Critical Minerals)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협정은 가격·공급·투자를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원동맹’의 출현을 의미한다.
우선 추진 배경을 보면 이번 협정의 성격은 분명하다. 미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구조적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채굴보다 더 중요한 정련·가공 단계에서 특정 국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산업 경쟁력을 넘어 국가안보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관세, 보조금, 투자 규제 등 기존 정책 수단을 넘어 동맹국과의 제도적 협력을 통해 공급망을 재편하려 하고 있다. 아직 협정의 구체적 틀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방향성은 명확하다. 시장에 맡기는 공급망에서 동맹이 설계하는 공급망으로의 전환이다.
이 협정이 기존 통상협정과 다른 결정적 지점은 가격에 있다. 지금까지의 자유무역 질서는 가격 형성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이번 협정은 참여국 간 핵심광물의 기준가격 또는 최저가격 설정,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관세·수입 규제 등 국경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특정 국가의 저가 공급 등 비(非)시장적 행위를 차단하고, 동시에 서방 기업들의 투자 유인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다시 말해 효율성보다 안정성과 전략성을 우선시하는 구조다. 공급망 다변화, 공동 투자, 환경·노동 기준 정립까지 포함하면 이 협정은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안보 플랫폼에 가깝다.
기존 협정과의 차이도 뚜렷하다. 그동안 핵심광물 분야에서는 광물안보파트너십(MSP)이나 각종 양해각서(MOU)와 같은 느슨한 협력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정보 공유와 투자 촉진에는 기여했지만,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이번 협정은 가격, 시장 접근, 무역 조치까지 포함하는 보다 강한 구속력을 지향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등장한 블록형 자원 질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에너지 시장에서의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다. 물론 OPEC과는 차이가 있으나, 가격과 공급을 공동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기존 무역 질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에 주는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한국은 핵심광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자원 취약국이면서 동시에 배터리·전기차·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글로벌 플레이어다. 즉, 공급망 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에서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미 한국은 다양한 핵심광물 협력체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번 협정은 차원이 다르다. 참여 여부보다 어떤 조건으로 참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특히 가격 규율이 도입될 경우, 한국 기업은 원가 상승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반면 협정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미국 중심 공급망에서 배제될 위험도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따라서 한국은 소극적인 참여를 넘어 적극적인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리튬·니켈·흑연 등 핵심 광물별로 전략적 포지셔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해외 자원개발뿐 아니라 정련·가공 능력 확보에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재활용 산업을 핵심 축으로 육성해 도시광산을 실질적 공급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규칙 설계 단계에서의 참여다. 지금 형성되고 있는 질서는 완성된 규칙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규칙이다. 한국이 이 과정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면, 향후 수십 년간 적용될 기준을 타국이 결정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공급망의 약한 고리가 아니라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결국 이 협정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여전히 자유무역의 논리로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시작된 경제안보 시대에 맞는 전략을 갖고 있는가. 핵심광물 협정은 그 전환점을 상징한다. 가격마저 동맹이 결정하는 시대에, 한국의 선택은 더 이상 지연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