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시대, 중간관리자가 사라진다

입력 2026-03-23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명호 (사)케이썬 이사장/미래학회 고문

선진국의 인공지능(AI)에 의한 고용 충격이 한국 채용 시장에도 닥치고 있다. AI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신입 직원, 특히 20대 저연차 사무직과 정보기술(IT) 초급 개발자들의 채용이 급격히 줄어드는 ‘채용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입사원이 맡던 업무들이 AI로 대체되면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로 인한 고용 위축이 아니다. 조직이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구조적 신호다.

그렇다고 경력직은 안전할까. AI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부터 대체하기 시작해 조직 위계를 따라 위로 올라간다. 신입의 채용 절벽은 그 첫 번째 징후일 뿐이다.

AI 도입 후 업무량 증가는 적응기 마찰

다음 표적은 조직의 허리, 중간 관리자다. 가트너의 2026년 예측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20%가 AI를 활용해 중간 관리자 직위의 절반 이상을 제거할 전망이다. 중간 관리자가 수십 년간 수행해온 역할, 즉 현장 데이터를 모아 경영진에게 전달하는 정보 신경망의 핵심 노드 기능을 이제 AI가 실시간으로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간 관리자를 위협하는 첫 번째 경로, 기술적 대체다.

현재 중간 관리자 소멸의 징후는 “AI를 쓰면 오히려 더 바빠진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AI 도입 후 기술직 직원의 업무 강도가 오히려 극단적으로 상승했고, AI 도입 후 업무량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이는 AI의 실패가 아닌 적응기의 마찰열이다. 20세기 PC 보급 직후에도 전환기의 동일한 혼란이 있었다. 그리고 이 마찰열 구간은 동시에 자연 선별의 기간이다. 불편함을 견디며 AI를 체화하는 사람과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사람 사이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새 도구의 문법을 익히는 과정이 끝나는 순간, 풍경은 급격하게 달라진다. 기술적 대체와는 별개로, 조직 내부에서도 소멸의 경로가 열린다. AI를 비서로 부리며 기획과 전략의 최상단에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AI 오케스트레이터’와, 쏟아지는 AI 산출물의 오탈자나 수정하며 저품질 결과물에 매몰되는 ’AI 청소부‘로 인재 계급도가 잔혹할 만큼 선명하게 두 동강 날 것이다. 두터웠던 중간 관리자 계층이 소수의 AI 감독자 직위로 압축·대체되는 것, 이것이 소멸의 실체다. 채용 절벽은 신입에서 시작되었지만, 종착지는 중간 관리자의 소멸이다.

그런데 중간 관리자의 소멸이 조직체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경고하듯, 중간 관리자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실무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임원이 될 수는 없다. 외부에서 기능을 빼앗기면서, 내부의 리더십 파이프라인까지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연공서열 문화는 AI 역량과 무관하게 연차가 지위를 보장한다는 암묵적 전제 위에 서 있다. AI 대분기는 바로 그 전제를 무너뜨린다. 대리·과장·차장으로 이어지는 직급 체계는 단순한 승진 사다리가 아니라, 조직 충성도와 암묵지 전수의 사회적 계약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축적된 현장 지식과 네트워크가 AI로 이식되면, 이 계약은 비용 절감을 위한 일방적 감원으로 해지될 수 있다.

젊은 인재 ‘리더십 경험’ 과정 준비해야

중간 관리자의 소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기업 차원에서는 세 가지가 시급하다. 남은 인력과 AI 에이전트의 협업 워크플로를 새로 그려야 하고, 젊은 인재들이 리더십을 경험할 내부 시뮬레이션 트랙을 구축해야 하며, AI 오케스트레이터와 AI 청소부의 양극화를 막을 AI 문해력 재교육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는 화이트칼라의 대규모 전직을 지원할 고용 안전망과, AI로 발생한 초과 이윤에 대한 과세로 안전망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조직의 허리가 뽑힌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설계하지 않으면, AI가 가져다준 효율의 과실은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다수의 지식 노동자는 구조적으로 소외될 것이다. 지금은 비용 절감의 시대가 아니라 조직을 재설계할 시간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검은 월요일’ 코스피, 5400선 겨우 지켜⋯개인 7조 '사자' VS 기관 4조 '팔자' 세기의 맞불
  • 중동 확전에 원·달러 환율 1510원 돌파…금융위기 환율 근접
  • 과잉 동원과 완벽 대비, 매출 특수와 쌓인 재고…극과 극 BTS 광화문 공연
  • '실용적 매파' 신현송 한은 총재 지명, 향후 통화정책에 미칠 영향은
  • ‘탈미국’ 베팅 멈춤…해외 증시·채권 동반 급락 [전쟁이 바꾼 돈의 흐름 ①]
  • 반도체 덕에 3월 중순 수출 50% 늘었지만⋯'중동 리스크' 먹구름
  • '국제 강아지의 날'…강아지에게 가장 묻고 싶은 말은 "지금 행복하니?" [데이터클립]
  • ‘EV 전환’ 브레이크…글로벌 車업계 줄줄이 속도 조절
  • 오늘의 상승종목

  • 03.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02,735,000
    • -0.67%
    • 이더리움
    • 3,068,000
    • -2.26%
    • 비트코인 캐시
    • 700,500
    • -0.21%
    • 리플
    • 2,058
    • -2.37%
    • 솔라나
    • 129,000
    • -1.9%
    • 에이다
    • 374
    • -3.36%
    • 트론
    • 462
    • -0.65%
    • 스텔라루멘
    • 235
    • -2.49%
    • 비트코인에스브이
    • 20,870
    • -1.97%
    • 체인링크
    • 12,970
    • -2.41%
    • 샌드박스
    • 116
    • -1.6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