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이 능사 아냐"…TGE 미루고 몸 사리는 가상자산 프로젝트들

입력 2026-03-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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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상자산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투자자들 기대를 모았던 주요 프로젝트들의 토근 발행(TGE)이 잇따라 지연되고 있다. 예정대로 상장이 이뤄지더라도 직후 가격이 급락해 원금 손실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시장은 이제 프로젝트 완성도보다 상장 시점과 토크노믹스(토큰 경제) 건전성을 먼저 따져보는 분위기다. 동시에 ‘고밸류·저유통량(High FDV·Low Float)’ 구조에 대한 피로감도 갈수록 짙어지는 모습이다.

12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현재 주요 프로젝트들은 개발 로드맵은 이어가고 있지만, 실제 TGE 시점은 시장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모습이다. ZK 증명 검증 인프라를 개발 중인 Aligned Layer는 올해 초 지갑 서비스(WaaS)를 공개하는 등 기술 개발을 지속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TGE 시점은 여전히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탄력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Arcium은 지난 2월 메인넷 알파를 출시하며 기밀 컴퓨팅 기술을 선보였지만, TGE 일정은 당초 1분기 말에서 2분기 초(3~4월 사이)로 조정된 상태다. 스포츠 기반 프로젝트 OneFootball도 당초 기대보다 다소 늦춰진 올해 2분기(4~5월)를 TGE 및 상장 목표 시점으로 거론된다. 현재는 프리 TGE 포털을 통해 에어드롭 작업을 진행하며 커뮤니티 결집에 주력하고 있다. 오픈소스 보상 프로토콜 Tea Protocol 역시 지난 2월 초 발행을 예고했지만, 시장 유동성 여건 등을 고려해 상장 전략을 재검토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TGE 연기가 단순한 일정 조정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TGE는 프로젝트가 토큰을 처음 발행해 시장 유통을 시작하는 절차로,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이벤트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상장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초기 참여자로서는 자금 회수 시점이 늦어질 뿐 아니라 자금이 장기간 묶이면서 다른 투자 기회를 놓치는 기회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여기에 상장이 지연되는 사이 시장 환경까지 악화하면 기대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투자 심리까지 위축돼 상장 이후 흥행 가능성도 떨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TGE가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투자자 손실 위험이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리서치 업체 메멘토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출시된 118개 토큰 중 84.7%가 현재 TGE 가격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다. 중간값 기준으로 보면 이들 토큰의 완전희석가치(FDV)는 상장 초기 가격 대비 71%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 배경으로 과도한 초기 밸류에이션 구조를 우선 지목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시장 조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비트코인이 박스권 흐름을 보이고, 투자심리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으면서 신규 상장 토큰에 대한 눈높이도 한층 높아진 상태다. 이 과정에서 벤처캐피털(VC) 투자 단가를 정당화하는 수준의 높은 FDV로 상장한 프로젝트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핵심은 일반 투자자들이 실제 진입하는 시점에는 이미 가격 부담이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상장 직후 차익 실현 물량과 매도 압력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개인 투자자들이 하방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시장 전반 신규 자금 유입이 둔화한 상황에서 대규모 언락 물량까지 겹치면 가격을 지탱할 매수세가 충분히 형성되기 어렵다. 상장 초기에는 제한된 유통량 덕분에 가격이 방어되는 듯 보이지만, 이후 매도 가능 물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가격이 급락하는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러티브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인공지능(AI)과 인프라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젝트들이 대거 쏟아지면서 희소성은 약해졌고, 실제 수익 모델이나 사용자 기반을 입증하지 못한 프로젝트들은 점차 외면받고 있다. 기술력만으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설명하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메멘토리서치도 이 같은 부진의 원인을 구조적인 부분에서 찾았다. 구체적으로 △서사에 기반해 형성된 밸류에이션 △진입 시점이 아닌 자금 회수(엑시트) 이벤트로 변질된 TGE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초기 급락 △출시 규모가 클수록 부진했던 성과 △인프라 및 AI 토큰이 주도한 하락세 등을 주요 배경으로 제시했다. 결국, 현재 시장은 프로젝트의 기술적 완성도만이 아니라, 언제 어떤 구조로 시장에 나오는지까지 함께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TGE 연기는 하락장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초기 참여자의 자금이 묶이면서 기회비용이 커지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며 “시장은 이제 실제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토크노믹스와 상장 이후의 유통구조를 더욱 엄격하게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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