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귀자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이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작품이 발표된 1992년 당시 한국 사회는 민주화 이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여성의 욕망과 권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시선이 강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점차 늘어나고 있었지만, 사회가 기대하는 '적절한 여성상'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소설의 주인공 강민주는 27세의 심리학자이자 여성운동 활동가이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목격하고 직접 학대를 겪은 경험은 그에게 여성폭력 문제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남겼다. 이후 여성문제상담소 연구원으로 일하며 다양한 여성폭력 사례를 접한 그는 이러한 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강민주는 이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납치 사건을 계획한다. 그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남자 배우 백승하가 여성들이 현실적 성차별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완벽한 남성 이미지'의 상징이라고 보고, 황남기와 공모해 그를 납치한다.
백승하 실종 사건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낸다. 강민주는 이를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남성신화를 폭로하려 했다. 그러나 납치된 백승하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예상과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특정 남성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에 있다는 점이다.
문학 속에서 제기된 질문은 오늘날 경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지표가 성별 임금 격차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국가로 꼽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약 24%로 OECD 평균(11.3%)의 약 2.6배 수준이다. 남성이 100만원을 벌 때 한국 여성은 약 76만원을, OECD 평균 여성은 약 88만7000원을 번다는 의미다.
국가데이터처의 ‘2024년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보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직장인 여성의 월 중위소득은 240만원으로 남성 344만원보다 104만원(30.2%) 적었다. 여성은 20대부터 7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애주기별로 보면 격차의 흐름은 더욱 뚜렷하다. 여성의 중위소득은 20대까지 200만원대에 머물다가 35~39세에 311만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40대부터 다시 200만원대로 떨어지며 감소세를 보인다. 반면 남성의 임금은 30대 초반에 350만원대를 기록한 뒤 45~49세에 479만원으로 최고점을 찍는다. 남성의 임금 상승이 40대 후반까지 이어지는 동안 여성의 임금 상승은 30대 후반에 사실상 멈추는 셈이다.
여성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일찍 꺾이는 주요 원인으로는 경력 단절이 꼽힌다.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30대에 감소하고 40대 초반에 최저점을 찍은 뒤 다시 증가하는 이른바 ‘M자형 곡선’을 보인다.
기업 내 유리천장 역시 임금 격차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여성은 승진과 보수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CGI자산운용이 국내 주요 상장사 360개 기업을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여성 임원 비율은 0.4%에 불과했다.
결국 강민주가 소설 속에서 문제 삼았던 ‘금지된 욕망’은 오늘날 현실에서는 임금 격차, 승진 장벽, 경력 단절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분명 달라졌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005년 이후 꾸준히 남성을 넘어섰고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리더도 늘어났다. 그러나 노동시장 구조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임금 격차와 경력 단절, 승진 장벽 등의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결국 30여 년 전 소설 속에서 제기된 ‘여성에게 금지된 것들’이라는 질문은 단순한 문학적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시장과 조직 구조 속에서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민주의 방식은 극단적이었지만, 그가 던졌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성의 욕망과 선택이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