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수출 급감 속 생산능력만 확대된 ‘캐파 역설’
수입 전기차 공세에 내수 흡수력도 한계 드러나

미국 관세와 보조금 장벽을 넘기 위한 현지화 전략이 오히려 국내 전기차 생산 기반을 압박하는 역설로 돌아오고 있다. 대미 수출 급감 속에 국내 전기차 생산 능력은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흡수할 시장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기업들은 시장의 전기차 전환을 대비해 국내 생산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왔다. 현대자동차는 현재 울산에 전기차 전용 '울산이브이(EV)' 공장을 짓고 있다. 생산능력은 연 20만 대 규모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간다. 기아 역시 광명과 화성에 전기차 전용 ‘이보 플랜트’를 구축해 국내 전기차 생산 기반을 확대했다.
문제는 전기차 생산 능력이 늘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대 수출 시장이던 미국이 현지 생산으로 빠르게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늘어난 국내 캐파를 흡수할 출구가 사실상 막혔다는 평가다.
실제로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아이오닉5·코나EV를 생산을 담당하는 울산 1공장 12라인을 10회가량 휴업한 바 있다. 글로벌 전기차 캐즘과 동시에 수출 부진이 겹치면서 라인 중단이 반복됐다.
기아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광명 이보 플랜트는 연 15만 대를, 화성 이보 플랜트는 목적기반차량(PBV) 중심으로 연 25만 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EV6·EV9 등 현지 생산이 확대되면서 국내에서 생산 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부품 산업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25% 부품 관세에 대응해 현지 소싱 비중을 높이면서, 국내 부품사 물량이 줄어드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 HMGMA 공급망 구축을 위해 지난해부터 부품 소싱 전담 태스크포스(TFT)를 가동 중이며, 이에 따라 국내 조달 비중은 36.2%까지 점진적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생산이 늘고 있지만, 이를 국내 시장에서 소화하는 데는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수입 전기차의 시장 잠식 속도가 빨라지면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테슬라는 국내에서 5만9893대를 판매해 점유율 27.2%를 기록했다. 1위 기아(6만609대·27.5%)를 불과 0.3%포인트(p) 차로 턱밑까지 쫓아왔다. 최근 국내 승용차 시장에 진입한 중국 비야디(BYD)는 7278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전년도(1037대)대비 무려 601.8% 급성장하기도 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지 생산 확대는 관세와 보조금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도 “이제는 국내 전기차 생산 구조와 물량 배분 전략을 함께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