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좀비딸'보다 관객 적었지만 매출은 더 높았던 'F1 더 무비'
영진위 "매출 아닌 관객수 흥행 기준⋯시장 상황 온전히 반영 못해"

한국 영화 흥행의 ‘판단 기준’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관객 수 위주의 영화 흥행 통계에서 벗어나 매출액 중심의 산업 통계 기준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 흥행 기준 변화가 현실화할 경우 영화 제작·투자·마케팅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2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진위는 최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통계집계기준 개편 타당성 연구’를 통해 20년 넘게 유지돼 온 관객 수 중심의 박스오피스 통계가 현재의 영화산업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KOBIS 공식 흥행 통계 기준을 관객 수가 아닌 매출액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극장 입장권 가격이 비교적 비슷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요일·시간대별 요금 차등, 각종 할인과 무료 초대권, IMAX·4DX·SCREENX 등 프리미엄 특별관 확산으로 관객 수와 실제 매출 간극이 커졌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별 작품의 손익분기점(BEP) 달성 여부가 영화산업의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더는관객 수만으로 영화 흥행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해외 주요 영화시장과 비교해도 한국 영화산업의 통계 기준은 독특하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대부분 국가에선 매출액을 공식적인 흥행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관객 수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 국가는 한국과 프랑스 정도다. 이마저도 프랑스는 행정통계 성격이 강해 한국처럼 관객 수가 실시간 흥행 지표로 소비되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특히 관객 수 중심 통계가 영화산업 내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도 변화의 이유로 꼽힌다. 관객 수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할인, 무료 초대권 남발, 기록 경쟁이 반복되면서 영화의 실질 매출과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하는 왜곡된 구조가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다양한 상영 포맷(IMAX, 돌비 시네마 등) 확산과 고가 특별관 증가, 입장권 가격 다변화 등으로 인해 관객 수만으론 영화의 실질적인 산업적 손익을 판단하기 어렵다.
실제로 흥행 기준이 바꾸면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도 뒤바뀐다. 관객 수 1위인 김한민 감독의 ‘명량’ 대신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 매출액으로 1위가 된다. ‘명량’ 누적 관객 수는 1761만 명이고 ‘극한직업’은 1626만 명이다. 매출을 보면 ‘명량’이 1357억 원, ‘극한직업’이 1396억 원이다.
지난해 개봉작만 봐도 관객 수와 매출액 간 괴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영화 ‘좀비딸’은 관객 수 563만 명, 매출액 531억 원이었다. 외화 ‘F1 더 무비’는 관객 수 521만 명으로 ‘좀비딸’보다 적었지만 매출액은 549억 원으로 더 높았다. 특별관 상영 비중 등이 매출 성과를 가른 것.
영진위는 다만 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관객 수 지표를 즉각 폐기하기보다는 '보조 지표'로 병행 활용, 단계적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관객 수 중심의 흥행 담론은 영화를 흥행작과 실패작이라는 이분법으로만 구분해 왔다”며 “매출액 지표로 흥행을 바라보게 되면 영화의 산업적 성과를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열린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매출액 중심 지표가 프리미엄관이나 고가 티켓에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 소규모 지역 극장이나 예술영화관은 오히려 더 불리해질 수 있다”며 “공공 정책이나 지원 제도를 설계할 때는 관객 수 지표의 역할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