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회복세에 '샌드위치 위기론' 소환한 이재용⋯기술 경쟁력 재정비 주문

입력 2026-01-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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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주가 반등에도 자만 경계
‘샌드위치 위기론’으로 긴장 유지
초격차 회복 위한 전략 선택 시험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샌드위치 위기론’을 소환했다. 최근 반도체 업황 회복에도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과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도체 업황 반등과 주가 급등으로 ‘삼성 부활론’이 확산하고 있지만 이에 안주하는 순간, 질적 경쟁력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최근 열린 전 계열사 임원 대상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 세미나’에서 “우리나라는 지금도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달라진 건 경쟁 구도가 바뀌었고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선대회장은 지난 2007년 1월 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단 회의에서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말한 바 있다. 가격 경쟁력은 중국에 밀리고, 기술 격차는 일본만큼 벌리지 못한 현실을 짚은 발언이었다.

◇실적·주가 반등 성공…‘질적 경쟁력’ 회복 주문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에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4와 HBM3E 실물이 전시돼있다. (연합뉴스)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에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4와 HBM3E 실물이 전시돼있다. (연합뉴스)

이 회장이 이 표현을 다시 꺼낸 것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삼성이 구조적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는 점을 환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넘어 기술력까지 빠르게 따라붙고 있고, 미국은 관세를 지렛대로 자국 투자를 압박하는 등 글로벌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기술 경쟁력 회복을 거듭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의 실적은 최근 회복세를 보이며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44조 원, 올해 120조 원 돌파가 가시권에 진입했다. 특히 올해는 전년 대비 두 배를 뛰어넘는 실적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주가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 회장 취임 3주년 당시 처음 10만 원을 돌파한 뒤, 최근 15만 원대를 기록하며 1년 새 세 배 가까이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숫자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며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이 회장의 메시지는 단기 반등에 만족하지 말고, 근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경고에 가깝다. 당장의 수익 확보가 기술적 격차나 미래 경쟁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기회’라는 표현을 통해 이번 기회를 놓칠 경우 재도약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표상의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강도 높은 실행력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인공지능(AI) 중심 경영 △우수인재 확보 △기업문화 혁신 등을 올해 중요한 과제로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위기를 넘어 재도약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진 크리스털 패를 수여했다. 지난해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던 것과 대비된다. 위기 이후 실행을 강조하며, 단순한 ‘각오 다지기’를 넘어 성과로 증명하라는 주문이 담겼다.

◇‘사즉생’ 다음은 실행…실질적 성과 요구로 해석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 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30일 서울 삼성동 한 치킨집에서 진행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 중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회장은 지난해 열린 임원 세미나에서도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를 다지는 영상 메시지를 공개했다. 지난해 내부 기강 잡기에 주력했던 메시지가 올해는 ‘실질적 성과 창출’로 구체화 됐다. 인공지능(AI) 열풍에 기댄 반등이 아닌, 대외 환경의 파고를 뚫고 나갈 삼성만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주문한 것이다. 아직 메모리 사업부를 제외한 파운드리 사업부나 시스템 반도체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는 여전히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특히 파운드리의 경우 시장 선두주자인 대만 TSMC의 독주가 날로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TSMC의 시장 점유율은 전 분기 대비 0.8%포인트(p) 상승한 71.0%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격전지로 꼽히는 2nm(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첨단 공정 시장에서 수율(양품 비율)과 성능을 개선해 승부수를 띄운다. 현재 시스템LSI 사업부의 차세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엑시노스 2600’을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으로 대량 양산하고 있으며, 이를 올해 스마트폰 신제품인 ‘갤럭시 S26 시리즈’에 성공적으로 탑재해 기술력이 건재함을 증명해야 한다. 지난해 수주한 테슬라의 차세대 AI 반도체 ‘AI5’ 및 ‘AI6’ 역시 안정적인 양산과 성능 검증을 통해 고객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자만을 경계하고 본질적 경쟁력을 회복하라는 이 회장의 주문은, 이제 구호를 넘어선 구체적인 결과물을 요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직접 경영 최전선에 나서 사업 접점을 넓히는 한편, 내부적으로도 경쟁력 회복을 위한 기반 다지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회동하며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는 등 대외 행보를 강화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그룹의 컨트롤타워격인 사업지원 TF를 사업지원실로 격상해 그룹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 또 인수·합병(M&A)팀도 신설해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을 위한 기반도 다졌다. 미국 테일러 공장과 평택·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 수요에 적기 대응할 방침이다. 올해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HBM4(6세대)는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기대감이 커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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