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잠들지 않는 시장'의 환상…누굴 위한 12시간 연장인가

입력 2026-0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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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의 시계가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오래 돌기 시작했다. 한국거래소(KRX)가 오는 6월부터 주식 매매 시간을 총 12시간으로 늘리고, 나아가 2027년에는 '24시간 거래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투자자를 유치하고 우리 자본시장의 국제적 정합성을 높여 명실상부한 '선진 시장'으로 도약하겠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화려한 청사진이 무색하게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거래소의 구상은 구체적이다. 우선 6월부터 오전 7~8시 프리마켓을 열고, 오후 4~8시까지 애프터마켓을 운영하며 '12시간 거래 체계'를 가동한다. 이는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의 개장 시각보다 먼저 장을 열어 시장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포석이다.

거래소는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시황을 조기에 반영하려는 투자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 국내 시장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거대한 변화의 과정에서 정작 시장의 핵심 주체인 투자자와 업계에 대한 배려가 철저히 실종됐다는 점이다.

거래소는 이번 안을 발표하면서 실무를 담당할 증권사들과 충분한 사전 협의나 소통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던져진 일방적인 통보는 ‘혁신’이 아니라 ‘폭주’에 가깝다.

거래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 뒷받침할 전산 인프라의 확충, 증권사 인력의 운용, 그리고 야간 시간대 발생할 수 있는 시장 변동성에 대한 리스크 관리까지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준비 없는 연장이 가져올 피로감은 고스란히 투자자와 업계 종사자들의 몫이다.

제대로 된 대책 없이 거래 시간만 늘려놓으면, 인력 운용의 한계로 인해 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사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업계에서 "누구를 위한 연장인가"라는 냉소적인 반응까지 나온다. 거래소의 이번 행보가 넥스트레이드라는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한 ‘내 밥그릇 지키기’나, 최근 상승세를 탄 코스피 열기에 편승하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진정한 시장 선진화는 단순히 문을 오래 열어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계획도, 준비도 없는 무책임한 정책은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는 독이 될 뿐이다. 과거 우리가 목격했던 수많은 졸속 행정의 결말은 언제나 '기회의 상실'이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목표가 진심이라면, 지금 거래소가 해야 할 일은 일방적인 발표가 아니다. 현장의 비명에 귀를 기울이고, 제도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로드맵부터 다시 짜는 것이다.

기술과 제도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노동의 질을 파괴하고 피로감만 가중하는 연장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선진 자본시장의 모습인지 의문이다. 자본시장의 시계는 단순히 빨리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돌리는 것이 우선이다. 준비 없는 '24시간 질주'는 결국 모두를 지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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