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권력은 헛되지만 재판은 허무해선 안된다

입력 2026-0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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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구약성경(한국천주교회 공용 번역본) ‘코헬렛’은 허무로 가득하다. 이 짧은 책에서만 ‘허무’라는 단어가 32번이나 반복된다. 인간의 권력과 성취, 지혜와 영광이 결국 시간 앞에서 얼마나 덧없는지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개신교 성경(전도서)에서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번역되는데 요즘 법정을 지켜보노라면 새삼 떠오른다.

지난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본류 재판 결심과 체포방해 사건 재판의 선고가 연이어 진행되면서,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법 절차는 사실상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윤 전 대통령을 둘러싼 재판은 비상계엄 선포(내란 우두머리)를 정점으로 체포 방해(특수공무집행방해)·무인기 침투(일반이적)·한덕수 재판 허위 증언(위증)·채상병 수사 외압(직권남용)·이종섭 호주 도피(범인도피)·명태균 무상 여론조사(정치자금법)·건진법사 허위사실 공표(공직선거법) 등 총 8개에 달한다. 한 개인에게 적용된 혐의의 숫자만 놓고 보더라도 헌정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 가운데 핵심인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서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다. 가장 먼저 결론이 난 체포 방해 사건에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형량을 두고 ‘중대성에 비해 낮다’는 비판도 있지만, 재판부는 이날 재판에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꾸짖었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체포 방해,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 등 핵심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일부 외신 공보 관련 무죄 판단을 제외하면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향후 진행 중인 다른 재판들의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의 감정은 분노를 넘어 허무에 가깝다. 생각과 말은 물론 행동으로 그 많은 일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당사자들의 입에서 반성과 사과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법정에서는 노골적인 재판 지연 전략과 책임 회피가 반복됐다. 변호인단은 윤 전 대통령을 두둔하며 케플러와 갈릴레이를 소환해 “진실을 말한 자들이 탄압받았다”고 주장했고, 몽테스키외를 들먹이며 “비상계엄은 법원이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공간이 아니라 궤변이 오가는 무대로 전락했다. 신속 재판을 지휘해야 할 재판부가 피의자의 방어권 차원에서 “절차적 만족감”을 언급하며 ‘침대 변론’을 방치한 측면도 없지 않다.

주요 피의자들이 법정을 희화화하는 장면들은 더욱 씁쓸하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지자들을 향해 하트와 ‘쌍따봉’을 보내고, 윤 전 대통령이 공판 도중 헛웃음을 짓는 모습은 법의 무게와 국가 권력의 책임이 얼마나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위협한 사건의 피의자들이 법정을 희화화하는 동안 국민은 그 장면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그들의 언행이 일반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아서다.

코헬렛은 말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들이 남긴 것은 책임도, 반성도 아닌 깊은 허무뿐이다. 이 재판의 진짜 의미는 형량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허무를 반복하지 않도록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느냐다. 그것이 사법의 마지막 역할일지도 모른다. 권력은 헛되지만, 재판마저 허무로 끝나선 안 될 것이다.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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