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분야 R&D 기반 성과도 좋아
디지털기술 평가로 혁신 유도해야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노벨평화상과 문학상을 제외하고 물리학·화학·생리의학 등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아직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30명 이상, 중국 역시 여러 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뚜렷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기 어려운 나라인가.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연구 구조, 연구 역량, 연구 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이 지적된다. 일부에서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부족을 원인으로 들기도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낮다. 2026년 정부의 전체 R&D 예산은 약 35조3000억 원으로 2025년 대비 20% 정도 증가했다. 단순한 예산 규모만 놓고 보면 이미 세계적 수준에 근접해 있으며, 민간 부문의 연구개발 투자 또한 상당하다. 연구비 부족 때문에 노벨상 수상이 어렵다는 주장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노벨상은 연구 주제의 독창성, 인류 삶에 대한 기여도, 그리고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그 연구가 세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묻는 상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농업기술은 이미 노벨상 역사 속에서 그 가치를 분명히 입증해 왔다. 병해충에 강하고 비바람에도 잘 견디는 ‘난쟁이 밀(Dwarf wheat)’을 개발해 세계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 박사가 197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농업기술이 단순한 산업기술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과학임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을 주도하고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고(故) 김기형 박사는 필자에게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분야는 농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한국 농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인류에 대한 기여도를 그 이유로 들며, 그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현재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판단되는 분야 중 하나는 농업생물 분야다. 미생물, 식물, 곤충 등 다양한 농업 생물자원을 활용해 환경을 보전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이 분야는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은행(World Bank)이 주관하고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가 참여한 잠비아 회의(‘Regional One Health, One Future’)에서 세계은행은 기후 스마트 농업의 중요한 대안으로 ‘곤충 산업’을 제시했다.
곤충은 적은 사료와 물로 고품질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어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에 매우 유용하다. 또한 음식물 부산물을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어 환경 보전과 기후 변화 대응에도 효과적이다. 대규모 인프라 없이 농가 단위에서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현실성도 높다. 한국의 곤충 관련 연구 역시 이미 국내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해외 석학으로 초청돼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서상기 전 국회의원 또한 한국 농업 분야의 노벨상 가능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그는 특히 곤충 활용 기술과 축산 분뇨 처리 기술이 환경을 살리는 매우 유망한 분야라며, 국가 차원의 전략적이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한국 농업기술이 노벨상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연구방향을 글로벌 이슈에 맞추고, 바이오·유전공학 기반의 기술 뒷받침을 해야 한다. 이제 농업연구는 단순한 수확량 증대를 넘어 영양 결핍을 해결하는 기능성 작물, 질병 저항성이 높은 작물, 토양을 회복시키는 작물로 그 지평을 넓혀야 한다. 농업 연구가 상당 부문 기후 변화, 식량 안보, 환경 보전등 글로벌 이슈 해결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생리의학이나 화학 등 기초과학과의 융합을 통해 인류의 먹을거리, 건강,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서 토양·기후·작물 상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기술이 결합된다면 한국 농업은 충분히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
둘째, 논문 수나 특허 수 중심의 연구 평가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가뭄과 홍수, 이상 고온이 일상화된 오늘날 농업은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사막 지역에서의 벼 재배 기술, 스마트 농업 시스템을 통한 물·비료 사용 최소화 기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재배 방식 등은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기후 적응형 농업기술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분야의 연구주제나 연구 성과는 단순한 논문 수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제 ‘농업의 디지털화’를 기반으로 연구성과 평가도 혁신하자. 농업이야말로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과학이며, 동시에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분야다. 이러한 인식 전환과 정책적 뒷받침이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한국이 농업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