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제언] 농업의 ‘장부가치’ vs ‘복합가치’

입력 2026-0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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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쉼표힐링팜 대표

농산물 가격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데, 비료·사료·인건비·임차료는 해마다 새 가격표를 달고 오른다. 이 단순한 산수 앞에서 농민의 노동과 시간, 그리고 삶은 점점 값싼 항목으로 취급되고 있다.

농가 소득 통계를 보면 매년 조금씩 개선되는 듯한 수치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평균 안에는 규모가 큰 법인농과 전업농, 소규모 고령농, 겸업농이 뒤섞여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과 통계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이 소득에는 농업 외 소득과 연금, 각종 보조금이 포함돼 있다.

‘농사를 지어서 번 돈’만 놓고 보면, 많은 농가의 현실은 여전히 빠듯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농가는 농업소득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농한기 일자리나 부업, 혹은 자녀의 도시 소득에 의존해 한 해를 버틴다. 그 과정에서 농업은 ‘주업’이 아니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부업’처럼 취급되고, 농민이라는 이름은 경제적 지위가 아닌 정서적 호칭으로 밀려난다.

농민의 삶을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영비 상승이다. 비료와 사료 가격은 국제 정세와 환율에 따라 급등하는 반면, 농산물 판매가는 수급 조절 실패와 수입 개방 영향으로 불안정하다. 과잉생산 시 가격이 폭락해도 농민은 속수무책이다. 경영비를 줄이려 투입재를 줄이면 품질이 떨어지고, 인건비를 아끼려 가족 노동을 늘리면 삶의 질이 파괴된다. 결국 비용은 국제시장이 결정하고 가격은 정책과 소비의 눈치 속에 결정되는 구조에서 농민의 선택지는 사라지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를 때마다 사회는 식량 안보를 걱정하지만, 그 불안이 생산자의 소득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부는 여전히 ‘저렴한 수입’에 집중하며, 국내 농민들은 가격 변동의 위험을 떠안으면서도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대가를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다. 결국 농가는 시설 현대화와 투자를 위해 낸 빚을 갚지 못하고 부채의 늪에 빠진다. 이제 농가 부채는 성장을 위한 동력이 아니라 농업의 미래를 저당 잡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는 이유는 “농업이라는 계산서로는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정은 생산성 향상과 규모화, 효율을 중심으로 설계돼 왔다. 그러나 이미 많은 농가는 ‘더 많이, 더 싸게’ 생산하라는 요구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효율이 아니라 안정성의 관점이다. 각 농가가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지속할 수 있는 소득 기준은 어디인지, 그 기준을 토대로 가격·보조·보험·부채 조정 정책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묻는 일이다.

농가의 장부만 보면 농업을 계속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장부로 시야를 넓히면, 농업은 식량 안보와 환경 보전, 지역 공동체 유지, 돌봄과 치유라는 가치를 동시에 제공한다. 이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채 농민에게만 경쟁력을 요구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농가의 계산서가 계속 붉어지는 사회는 결국 모두의 부담을 키운다. 농가 소득과 경영비, 곡물 가격과 부채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농업과 농민에게 어떤 자리를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언어다. 그 선택을 미루는 동안, 농촌에서는 또 한 명의 농민이 조용히 논과 밭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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