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폐배터리' 음지로 흘러간다…제도 사각지대 ‘책임 주체’ 표류

입력 2026-01-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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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후 배터리, 이력·책임 기준 없는 유통 구조
산업부·국토부·환경부 각기 나뉜 관리체계
입법 급하지만 ‘통합 관리 체계’ 필요성 목소리

폐차된 전기차의 ‘고위험 배터리’가 책임 주체도, 관리 기준도 없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전기차에서 탈거된 사용 후 배터리는 폭발 위험이 크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규율할 제도적 공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하는지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보급 속도에 비해 제도 정비가 뒤처지지 않도록 빠른 시일 내에 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기차 배터리 처리 체계는 구입 시점과 제도 적용 여부에 따라 관리 방식이 갈리면서 일관된 기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는 공공 관리 체계로, 상당 물량은 민간 시장에서 별다른 관리 없이 유통되고 있다. 2021년 이전 구매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는 사용 종료 후 배터리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해야 한다. 반납된 배터리는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로 옮겨져 성능 평가를 받은 뒤 재사용이나 재활용 용도로 매각된다.

반면 2021년 이후 구매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는 배터리 반납 의무가 없다. 이 경우 폐차장에서 배터리가 탈거된 뒤 공식 관리 체계 밖에서 별다른 관리 없이 거래된다. 반납 의무가 없는 배터리에 대해서는 이력 관리나 성능 검사, 평가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고부가가치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활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의 운영 여건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거점수거센터는 환경부 소관 4곳과 지자체 운영 2곳 등 총 6곳에 불과하다. 배터리는 제조사마다 재료와 크기, 구조가 달라 재사용이나 재활용 방식을 일괄 적용하기 어렵다. 각 기업의 폐배터리 특성에 맞춰 개별 공정을 적용해야 해 대량 처리가 쉽지 않은 구조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활용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성능을 보완해 다른 차량에 다시 장착하는 재제조(리퍼), 골프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재사용, 배터리를 분쇄해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회수하는 재활용이다.

하지만 이를 가르는 명확한 성능 평가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배터리 해체 방식은 물론 재활용을 위한 준비 과정도 제각각이어서 산업 자원으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이 전 과정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사용 후 배터리의 수거부터 분해, 자원 회수까지 전 과정의 효율을 높이고 추적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중국과 일본 역시 생산자 책임 제도나 사후 시장 조성을 논의 중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 같은 체계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국회에는 사용 후 배터리의 안전한 취급과 투명한 거래를 위해 사업자 등록제 도입 등을 담은 법률안이 발의돼 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업계에서는 제도 공백이 장기화할수록 시장 혼란과 안전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입법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관리 체계 설계에 대해서는 추가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차량 내 배터리는 국토교통부, 차량에서 분리된 배터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재활용 단계는 환경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향후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 같은 부처 분담 구조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빈틈을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사고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둘러싼 혼선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법과 제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처가 나뉘어 관리되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서로 넘기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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