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투자자들이 글로벌 온체인 시장으로 대거 이탈하는 배경으로는 경직된 국내 규제 환경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각종 규제 빗장을 걸어 잠갔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을 보호 장치가 전무한 제도권 밖으로 내모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가상자산 통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미국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의 운용자산(AUM)은 1204억 달러로 집계됐다. 출시 초기였던 2024년 2월(283억달러) 대비 4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국내 시장은 원화 기반 현물 거래를 중심으로 제도가 설계돼 있지만, 글로벌 시장은 ETF·스테이블코인 규율 정비를 축으로 제도권 상품과 온체인 운용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제도화'의 길을 걷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시장규제법(MiCA)을 통해 포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확립했고, 미국 역시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에 대한 입법 논의를 구체화하며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있다. 이러한 인프라 성장에 힘입어 기관 투자자 유입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SGA) 분석에 따르면 미국 가상자산 시장 내 기관 비중은 24.5% 수준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산업 육성보다 규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내 거래소의 가상자산 선물 상품 출시는 불가능하며, 미신고 해외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앱과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등 접근 규제는 강화됐다. 국내 원화거래소에서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가 제도적으로 제공되지 않는 점도 수요를 해외·온체인으로 밀어내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김치 프리미엄(국내 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비싼 현상)의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원화마켓과 글로벌 달러마켓의 인위적 분절이 가격 괴리를 만들고, 투자자는 해외 온체인 시장에서 수익을 낸 뒤 국내로 보내 현금화할 유인이 커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민이 투자자 금융 영토를 넓히는 동시에,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함께 키운다는 점이다. 온체인 프로토콜은 투자자가 직접 지갑을 관리하고 거래가 국경을 넘나드는 만큼, 분쟁 발생 시 관할과 책임 소재가 모호해진다. 특히 파생거래는 손실 전이 속도가 빨라 변동성 확대 시 레버리지 포지션이 연쇄 청산되면 이용자는 순식간에 원금 대부분을 잃을 수 있다. 중앙화 거래소와 달리 온체인에서는 사후 구제 수단도 제한적이다. 프로젝트 개발자가 자금을 들고 사라지는 '러그풀(Rug Pull)', 주문 실수(Fat finger), 스마트 컨트랙트 해킹 등 치명적 위험까지 투자자가 온전히 떠안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막는 규제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자산 시장의 국경이 이미 허물어진 상황에서 국내 규제만 고집하는 것은 자본 유출과 투자자 위험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 규제 체계가 뚜렷하게 적립이 안 돼 있다 보니 시장 불확실성이 높고, 서비스 제공 자체에 여러가지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며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이 조속히 통과돼 서비스 제공자들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법인투자 허용이 가장 시급하다”며 “상품의 고도화도 허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