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가치관 선진화’로 디지털전환 재촉을

입력 2026-0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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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수 송현경제연구소 국제경제부문 대표

근대적 생존 중시가 창의성 훼손
주거·사회안전망 강화 추진하고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서둘러야

컴퓨터 휴대전화 등 일부 기기에 갇혀 있던 디지털기술이 가전제품, 자동차와 공장용 기계 등에 본격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방대한 정보 수집·분석 능력과 추론 능력까지 갖춘 인공지능(AI) 그리고 24시간 쉼 없이 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AI 및 로봇의 강력한 지적·육체적 능력을 활용해 가사노동, 공장노동 등 힘들고 반복적인 일과의 많은 부분을 처리함은 물론 종전에는 불가능했던 여러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업은 상상 이상의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새롭게 창출, 효율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인류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디지털전환이라는 문명사적 도약을 앞당기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듯 그리고 현 정부가 그러하듯이 양자컴퓨터와 첨단 반도체, 초고속광대역 통신망, 대규모 데이터센터 및 로봇의 개발이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디지털 하드웨어 기기들은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성찰해야 할 화두는 디지털기술로 얻게 된 막강한 능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 질문은 인간의 본성과 목적에 대한 재탐색 나아가, 경제적 측면에서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새로운 하드웨어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 하드웨어를 이용해 인간의 다양한 필요를 발견·충족할 수 있는 솔루션의 창안 즉, 각 분야별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더 중요하다. 이는 과학적 분석과 인간적 상상력을 결합해 다양한 전문적 아이디어를 가공·재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특히, 종전에 없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창출하려면 인간적 상상력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 구성원들의 상상력을 키우려면 개개인의 주체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전문역량을 키우는 동시에 사회적·조직적 참여를 보장하는 사회제도와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물질주의(경제적·물리적 안전 최우선), 권위주의, 연고주의 등 근대적 생존 중시 가치관에서 벗어나 탈물질주의, 성 평등과 소수자 관용, 합리적·법적 권위 존중과 사회적 신뢰 등 자기표현 가치가 중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러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가치관은 그간의 빠른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존 중시 가치에 고착되어 있어 여타 선진국과 매우 다르다. 이러한 가치관의 정체는 한국 사회와 경제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훼손한다. 사회적 자본의 부족과 이로 인한 거래비용의 증가 및 기업의 투자·혁신 의욕 감소가 초래되고, 사회안전망 미흡으로 잠재력 높은 지방 및 소외계층 인재가 기회를 얻지 못하여 국가의 인적자본 축적이 저해되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지위 경쟁에 함몰돼 시간·노력을 낭비하고 불행감을 느끼는 동시에 디지털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역량을 강화하지 못한다. 심각한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특히, 디지털 소프트웨어 발전 미흡도 우리 사회가 생존지향적 가치관에 얽매여 있는 데 크게 기인한다.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선진국형 자기표현 가치 중심으로 진화시키려면 국민들의 생존 불안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주거 안정 및 사회안전망 강화를 추진하여야 한다. 주택공급을 확대하고 대형주택·다주택자에 대한 대출 금지를 추진하여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동 수당이나 실업 급여의 실효성을 높이고 창업자의 재도전 안전판을 강화해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지위 경쟁을 줄이는 것도 중요한 바,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 및 지방국립대 육성, 5극3특 정책의 과감한 실행 등을 통해 정치·경제·문화의 서울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아울러, 과감한 노동개혁을 추진하여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및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과 고용 조건의 격차를 줄이고 노동시장 간 이동성을 높이는 한편, 정부의 근로자 재취업 교육·일자리 중개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성과급 및 직무급 확대를 통해 직무와 능력에 기반한 보상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자기표현 가치가 확산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긴요하다. 개인의 자율성, 성 평등 및 소수자 인권 보호 등 자기표현 가치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시민 또는 하위 조직구성원들이 국가 및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확대해야 한다. 공교육에서 협력과 관용,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강화하여 미래 세대가 자기표현 가치를 체화하도록 이끌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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