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개원의의 연말

입력 2025-12-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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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홀로 병원에 남아 어디 불 켜진 곳은 없는지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 날은 병원에 남아 잠시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본다. 올 한 해도 많은 환자가 다녀갔다. 고혈압과 당뇨로 늘 다니시는 분들은 내년에 만나자며 이미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혈액검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간 수치 이상 소견을 물고 늘어져 결국 담관암을 진단하고 수술까지 마친 환자가 생각난다. 역시 혈액검사에서 빈혈 소견을 넘어가지 않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검사를 진행해 대장암을 발견한 환자도 기억난다. 이분도 다행히 수술받고 건강을 찾으셨다. 두 분 다 발견 당시 종괴의 모양은 흉측하고 컸지만, 병기가 깊지 않아 희망을 걸어 볼 수 있겠다.

이런 뿌듯한 순간만 있지는 않았다. 안타깝게 병을 키운 때도 있었다. 분명 당시에는 큰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나중에 환자 상태가 악화하여 의무 기록을 검토하는 중에 내가 놓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큰 자괴감에 빠졌는지 모른다. 앞서 병을 잘 발견한 뿌듯함이 병을 놓친 자괴감을 상쇄하면 좋으련만 두 감정은 섞이지 않는다. 자괴감은 내면 깊이 마련된 방에 또 하나의 슬픈 기억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 방은 숙명과도 같아 평생 의사로 살아가면서 마주해야 하는 묵직한 현실이 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로마의 개선장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뒤따르는 노예들이 메멘토 모리를 외쳤다고 전승이 내려온다. 나 역시 한 해의 끝자락에서 자괴감의 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다. ‘의사도 인간이다. 실수할 수 있고 병을 놓칠 수 있다. 그러니 세심히 하고 주의하자.’

한 해의 마지막 진료를 마친 날은 감사로 마무리한다. 병을 제때 발견해 환자들의 삶이 건강해진 것에 감사한다. 내 슬픈 자괴감의 방에도 감사한다. 그 방의 목소리가 나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새해에 환자들을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진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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