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간 전세로 거주한 뒤 분양받을 수 있어 ‘내 집 마련의 지름길’로 홍보돼 온 분양전환형 민간임대 아파트에서 분양가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앞으로 5년간 4만 가구가량이 분양전환을 앞둔 상태라 충돌이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분양전환형 민간임대 아파트에서 분양 전환을 앞두고 분양가 문제로 입주민과 시행사 간 다툼이 발생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고등동 ‘판교밸리제일풍경채’는 갈등이 소송전으로까지 번진 대표적 사례다.
판교밸리제일풍경채는 2020년 준공된 543가구 규모로 2017년 12월 4년 임대 후 우선 분양전환 조건으로 입주민을 모집했다. 2020년 4월 입주했으며 당시 보증금은 5억5000만 원, 월 임대료는 30만 원이었다. 시행사는 성남고등S1PFV로 2021년 사업 주체였던 HMG가 지분을 메테우스자산운용에 매각했으며 NH투자증권이 수탁사로 참여하고 있다.
입주자 모집 당시 시행사 측은 분양전환 시점에 인근 시세의 70~80% 수준인 8억 원대 분양을 안내했지만 의무임대 기간 종료 이후 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는 12억 원대로 제시됐다. 현재 분양전환이 진행 중인 가운데 분양가는 전용 84㎡ 기준 12억3400만 원이다.
입주민 연합 비상대책위원회는 시행사가 사모펀드로 바뀐 이후 분양가가 급등했다고 주장한다. 비대위는 “시행사만 수천억 원의 폭리를 취하고 임차인의 재산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12억 원 중반대 분양가는 서민에게 ‘그림의 떡’”이라고 비판했다. 비대위는 메테우스자산운용의 부동산투자신탁과 수탁사인 NH투자증권 간 담합 의혹도 제기하며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성남시와 성남시의회 등을 찾아 임차인 재산권 보호에 나서달라고도 요구하고 있다.
이 단지는 이미 분양전환 가격을 두고 소송을 벌인 바 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입주민 215명이 시행사 성남고등S1PFV를 상대로 제기한 분양전환가격 확인 소송에서 시행사의 자율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민간임대주택의 분양전환은 법적 의무가 아니며 분양전환 가격 역시 임대인이 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입주자 모집 당시 “시세의 70~80% 수준으로 분양 전환될 것”이라는 구두 안내도 법적 효력이 없다고 봤다. 메테우스자산운용은 판결 이후에도 이어지는 입주민들의 항의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싸움은 전국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국 49개 사업장에서 2030년까지 3만9430가구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계약이 만료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민간 분양전환형 임대아파트의 분양가 산정 기준이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민간임대 후 분양 아파트의 경우 분양 방법이 명시돼 있지 않아 분양가를 둘러싼 시행사와 임차인의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며 “감정평가를 활용하는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도 “공공임대는 분양가가 정해져 있지만 민간은 확정 분양가가 명시되지 않아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민간 사업이라 법적 규제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모집공고나 분양계약 단계에서 분양가를 미리 공고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