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쏘아 올린 반도체 부활 신호탄에 장비 업계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업황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단순한 기대감을 넘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공정 로드맵에 이름을 올릴 수혜 기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로 투자가 급격히 쏠리면서, HBM 관련 장비업체와 범용 D램 장비업체 간 희비가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에 메모리 제조사들의 투자 무게중심이 범용 D램에서 HBM으로 이동하고, 특히 HBM 제조에 필수적인 후공정 장비를 중심으로 선택적 투자와 수혜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출하량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올해 하반기 엔비디아의 HBM3E 퀄테스트를 통과한 삼성전자의 내년 HBM 출하량이 올해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미 빅테크 기업들의 주문이 급증하는 가운데, HBM 시장의 주류도 HBM3E(5세대 HBM
)에서 HBM4(6세대)로 빠르게 넘어가는 등 양사의 HBM 집중 전략은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HBM 수요 확대는 반도체 장비업계 전반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HBM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올해까지 메모리 전공정 장비 투자를 이어온 만큼, 삼성전자 밸류체인에 속한 일부 메모리 장비업체들은 상대적인 수혜를 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테스와 원익IPS 등이다.
앞으로 삼성전자가 HBM3E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내년부터는 HBM 제조를 위한 후공정 장비업체들의 수혜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올해 SK하이닉스 공급망에서는 HBM 관련 기술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들이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HBM 관련 기술 장비 제조사인 한미반도체와 펨트론 같은 기업들이다.
HBM 공정에 특화된 장비를 앞세운 기업들이 수혜를 입으며 존재감을 키웠다는 평가다. 또 HBM 패키징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동시에 고객사로 두고 HBM 확대 흐름에 올라탄 상황이다. 하나마이크론과 테크윙 등 기업들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큰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반면 범용 D램 장비업체들의 분위기는 다소 차갑다. 메모리 제조사들이 범용 D램 공급량을 조절하고 HBM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밝히고 있어서다. AI 호황기에 수익성이 높은 HBM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전략이 확산되는 흐름이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이 범용 D램 비중을 줄이고 HBM에 ‘올인’하겠다는 초강수를 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내년에도 반도체 업황 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범용D램 장비업체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혜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HBM과 범용 D램 간 양극화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장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메모리 전공정 투자가 많았던 영향으로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됐다”며 “내년부터는 HBM 확대 흐름 속에서 후공정 장비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