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 42조 원 규모 시장으로 커질 전망
정유사들 잇따라 MOU 맺으며 협력 나서
신성장동력으로 부상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와 발열 문제 해결이 시급해지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액침냉각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정제마진 악화와 석유 수요 둔화로 업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인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데이터센터·통신사·클라우드 기업 등을 대상으로 액침냉각유 실증과 공급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액침냉각은 AI 데이터센터 열기를 식혀줄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1200배 이상 높은 특수 냉각유에 서버를 직접 담가 열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기존 공랭·수랭 대비 냉각 효율이 월등히 높다. 전력 사용량을 30~90%까지 줄일 수 있고, 발열에 따른 서버 성능 저하 방지도 가능하다.
글로벌 시장 성장도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들에 따르면 글로벌 액침냉각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5억~7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며, AI 서버 확산과 함께 연평균 25~30% 성장해 2040년 42조 원으로 커질 수 있다. 2040년에는 액침냉각 기술이 데이터센터,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열관리 시장에서 각각 22%, 20%, 7%를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서울대 공과대학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액침냉각 실증 연구에 착수했다. 이번 MOU는 공랭식으로 운영 중인 서울대 AI 연구실 서버에서 발생하는 팬 소음과 높은 내부 온도로 인해 연구 활동에 지장이 생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됐다. HD현대오일뱅크의 액침냉각 기술을 적용해 내년 초부터 기존 공랭식을 액침냉각 방식으로 전환해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전자와 AI 데이터센터용 에너지·냉각 통합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며 사업화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GS칼텍스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액침냉각유를 출시한 이후 LG유플러스의 데이터센터 내 실증 데모룸에 액침냉각유를 공급하고, AI 서버 운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검증하기 위한 협력 중이다. LG유플러스 외에도 삼성SDS, GS건설과도 기술 개발 및 실증에 나선 상태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온과 SK엔무브를 합병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김원기 SK엔무브 CIC(사내독립기업) 사장은 합병 후 '통합 SK온'의 비전을 공유하는 타운홀 미팅에서 "전 세계 신차의 60%에 SK엔무브의 윤활유가 들어가 있는 만큼, 전동화 시대에도 액침냉각과 열폭주 방지 기술 등 독보적인 품질로 SK온 배터리와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SK엔무브는 지난해부터 SK텔레콤의 AI 전용 데이터센터에 액침냉각유를 공급하며 실증 사업을 진행해 왔다.
정유사들이 액침냉각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구조적인 업황 변화도 있다. 전기차 확산과 석유 수요 둔화, 중국발 공급 과잉 등으로 정유 산업의 중장기 성장성이 약화되면서, 기존 정유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졌다는 판단이다. 최근 들어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고 남기는 평균 이익인 정제마진이 오르긴 했지만, 과연 이 흐름이 장기화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데이터센터 냉각유는 고기능·고단가 제품으로, 정유사들이 강점을 가진 정제·화학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진입 장벽을 낮춘다.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이 커질수록 냉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정유사 입장에선 불황 국면에서 기술 기반 신사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