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이덕환 칼럼] 무기력해진 ‘수능’ 대안 찾아야 한다

입력 2025-12-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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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난이도 조절실패’ 해마다 반복돼
창의·인성 겸비한 융합 교육 한계
객관식 문제풀이 버려야 미래 열려

고교 교육 정상화를 명분으로 요란하게 도입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이제 수명을 다한 모양새다. 정부가 수능 난이도 조절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수능을 처음 도입했던 1993년부터 3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반복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이제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으로 출제했다는 수능출제위원장의 발언은 아무도 믿지 않는 새빨간 거짓말이 돼버렸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사교육 시장에서 올해 수능도 불수능이었다는 섣부른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출제 오류를 의심하는 이의신청도 크게 늘어났다. 이의가 제기된 51개 문항에 대해서 평가원이 ‘이상 없다’고 밝혔지만 일부 문제에 대해서 소송이 제기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있다. 물론 수능 성적이 공개되는 12월 5일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는 평가다.

이의가 제기된 수능 문제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수능출제위원장의 호언장담과 달리 ‘문제 풀이 기술의 반복 훈련’이 필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에 소개된 어느 국어 강사의 조언이 눈길을 끈다. “틀린 보기부터 지워가는 전형적인 수능 문제 풀이 방법을 사용하면 (평가원이 요구하는) 정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의신청의 80%가 집중된 영어 24번이 대표적이다. 영어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지문은 수험생은 물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외국인 대학생에게도 아리송한 문제였다고 한다. 변별력을 위해 만들어낸 억지 문항이었다는 뜻이다. 평가원이 수험생의 지적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한다는 불만도 있다.

교수들까지 이의를 제기한 국어 3번과 17번도 마찬가지다. 지문의 완성도가 턱없이 떨어져서 문제를 푸는 수험생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난수표’였다는 지적도 있었고, 고등학생은 “3일이 걸려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사실상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문제가 됐던 ‘킬러 문항’에 가까운 문항이었다는 뜻이다.

수능 문제에 대해서 “지문에 제시되지 않은 정보를 들고나와서 오류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는 모양이다. 이상기체의 열용량을 묻는 2008학년도 물리 문항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다원자 분자는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시 평가원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몹시 위험한 지적이다.

당시 물리학회가 평가원의 그런 주장에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만 했다. 수능을 위한 지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능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제한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 안에서 수능의 정상적인 출제가 불가능해졌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동안 34회나 시행된 수능에서 출제되었던 ‘기출문제’와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의 문항은 모두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최소한의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지문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문항에 새로운 ‘함정’을 숨겨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 돼버렸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재를 오지선다의 객관식 짝퉁 수능으로 길러낼 수는 없는 일이다. 창의 교육도 불가능하고, 책임·배려·나눔을 목표로 하는 인성 교육도 불가능하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합리성과 예술적 창조력을 바탕으로 하는 융합 교육도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이제 수능은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 실제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수능 성적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진실이다.

오늘날 수능은 객관식 문제 풀이 훈련을 위해 사교육 시장에 쏟아부을 수 있는 학부모의 재력(財力)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 사실이다.

아무 준비도 없이 밀어붙인 ‘고교학점제’에 시달리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2028학년도부터 치르게 될 ‘문·이과 통합형’ 수능도 재앙적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의 ‘사회’와 ‘과학’이 고등학교 1학년의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으로 끝나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은 수능 과목을 반복하는 교육으로 채워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제 현실적으로 출제도 불가능해지고, 기능도 상실해 버린 ‘짝퉁 수능’의 대안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국가가 시행하는 ‘객관식 수능’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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