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멈춰 있지 않는다. 발전하거나 쇠퇴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서울의 중심에서는 이 간단한 원리가 종종 잊힌다.
최근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개발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도 그런 맥락이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조선 왕조의 상징성이 응축된 공간이니만큼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보존이 실제로는 수십 년째 방치된 슬럼과 노후 불법 건축물을 그대로 두는 ‘실효성 없는 보존’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데 있다.
보존에 집중하던 풍경은 이미 여러 번 목격됐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과거 흔적을 남긴다’는 명분을 내세워 서울역 고가도로를 ‘서울로 7017’로 조성했다. 고가 위에 다양한 구조물과 콘셉트를 얹었지만, 현실에서는 차량 흐름과 상권 동선을 뒤틀며 도심의 기능적 연결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재개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성동구치소 부지 개발 당시 일부 수용동과 담장을 ‘기억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리모델링하도록 유도한 사례가 그랬다. 상징성도 모호하고 활용도도 낮은 건물을 억지로 남겨두다 보니 오히려 신축 단지 안에 흉물처럼 떠 있는 결과만 남았다. 개포주공4단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건축 과정에서 58개 동 중 2개 동을 ‘미래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뒀지만, 준공 후 남겨진 건물은 단지의 디자인·공간 구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단절된 구조물처럼 남아 비판을 불렀다.
도시의 보존이 이렇게 원형 추종에만 매달리면 도시는 기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파편을 흉물처럼 틈새에 박아두는 결과만 남긴다.
이런 실패 사례들은 명확한 교훈을 준다. 보존은 공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남기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발 반대의 상당수는 이런 가치 논의보다는 다른 동기가 개입되곤 한다. 이번 사안도 논란에 선 당사자들은 부인하겠지만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싸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럴 듯한 논리를 앞세우고 있지만 이번에도 정치적 셈법이 도시의 미래를 볼모로 잡고 행해지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과거에도 있었다. 청계천 사업은 교통 혼잡·상권 붕괴를 이유로 거센 반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청계천은 세계적 도시재생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당시 반대했던 정치인들은 이번 세운4구역 개발에도 반대입장을 내놓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보자. 방치된 판잣집과 불법 증축이 늘어선 현재의 모습이 과연 세계유산을 위한 최선의 모습이 맞을까? 문화재는 주변 도시가 함께 숨 쉬고 살아갈 때 생명력을 가진다. 세계의 도시들은 보존과 개발의 조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왔다. 중요한 건 ‘개발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계산이 섞인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라,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문화유산 보호를 동시에 현실적으로 달성하는 설계다.
문화재를 지키는 일과 도시를 활성화하는 일은 결코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완벽한 조화는 어렵더라도, 최선의 균형은 설계할 수 있다.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멈추게 할 것이 아니라, 보존의 가치를 제대로 살려 도시가 다시 걷고, 숨 쉬고,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세운4구역에서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용기 있는 균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