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A씨는 인근 도로의 차량 소음이 심해 창문을 열고 생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야간 시간 과속 차량, 폭주 오토바이 등 소음으로 잠을 잘 수 없는 수준이다. 민원을 제기해도 창문을 닫고 측정한 소음 기준을 충족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개한 공동주택 입주민 도로교통 소음 피해 관련 민원 사례)
4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실외 소음 기준을 완화해 주택 공급 확대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9월 7일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는 이런 내용의 ‘환경영향평가 시 실외 소음 기준 합리화’ 방안이 담겼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사업부지 면적과 관계없이 환경법 대신 주택법령 기준을 따를 수 있도록 소음 기준이 완화될 전망이다.
공공주택 사업의 경우 면적에 관계없이 주택법령만 적용하도록 특례도 마련한다. 관련 법 개정안은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 대표로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윤 의원 등 10인은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1991년 도입된 환경정책기본법령상의 실외소음기준은 도시화가 진행되고, 창호 등 건축기술 발달로 인해 양호한 거주환경 조성이 가능해진 점을 고려할 때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개정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구상이 나오게 된 건 현행법상 주택을 지을 때 사업부지 면적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시 적용받는 법령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지 면적이 30만㎡ 이상인 사업지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일반 환경영향평가가 적용되지만, 15만㎡ 이상∼30만㎡ 이하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거나 지자체 조례에 따라 주택법령상의 소음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환경법령은 층수와 무관하게 실외 소음(주간 65dB·야간 55dB 미만)만 평가하지만, 주택법령은 6층 이상 고층일 경우 실외 소음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주택법에선 공동주택 1∼5층의 저층부는 실외 소음도(65dB 미만)를, 6층 이상의 고층부는 실내 소음도(45dB 미만)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실외 소음이 평가 기준에 포함되면 시공사는 소음을 저감하기 위해 방음벽, 방음둑, 방음림(소음 막이 숲) 등을 설치해야 해 건설 비용이 늘어난다. 아울러 이런 설비는 저층부에서만 효과를 발휘할 뿐, 고층부는 사실상 기준 충족이 어렵다는 게 건설업계의 주장이다. 때문에 환경법 대신 주택법을 적용받게 해달라는 건 오랜 요구였다.
정부는 이처럼 건설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하지만, 무턱대고 실외 소음 기준을 완화하는 건 생활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법적 기준이 있음에도 소음 문제를 호소하는 사례가 그동안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민원을 보면 경기도 양주 옥정지구의 한 아파트는 기존 4층 계획이 10층으로 변경된 뒤 인근 국도 3호선 대체우회도로가 개통하면서 소음이 급증했지만, 방음벽 설치만으로는 효과가 미미했다. 실제 측정 결과 야간 67.1dB, 주간 71.5dB로 모두 기준치를 크게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주민들은 방음터널 설치 등을 요구했으나 사업 시행 주체와 도로 관리 주체가 서로 달라 해결이 지연되다 결국 집단민원으로 이어졌다.
의정부 민락지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 민락 지하차도와 고속도로 나들목이 개통된 이후 하루 평균 6만 대 이상 차량이 통과하면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소음 피해를 호소했지만, 관계기관은 수년간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주민 782명이 공동으로 소음 저감 대책을 요구했으나 실질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이 역시 권익위 집단민원으로 접수됐다.
업계 관계자는 “실내 기준만 적용하는 완화책은 단기적으로 절차를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생활환경 악화와 건강 위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규제 완화보다 실내·실외 병행 평가와 저감 기술 강화 등 일관된 소음 관리 체계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