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언어·인종 넘어 개방과 공존이 금융 혁신 낳았다 [K-금융 현장을 가다④]

입력 2025-11-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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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11-26 17:21)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금융권의 해외 도전은 반세기 넘게 이어져 왔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축적된 경험은 이제 ‘K-금융’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동남아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금융사들이 영국 ·싱가포르 같은 금융 선진국으로까지 시야를 넓히는 것도 세계 금융의 표준과 변화가 형성되는 현장에서 경쟁력을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스테이블코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한국 금융권의 주요 과제 역시 이곳에서 먼저 진화한다. 금융사들의 해외 행보는 단순한 진출이 아니라 앞으로의 전략 방향을 결정할 기준점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의미가 크다. 선진 금융 현장에서 포착된 변화의 흐름을 통해 K-금융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야시장서 네카오 간편결제
국적 초월한 결제시스템 편리
국토 한계 넘으려 금융사 유치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금융지구 전경 (김재은 기자 dove@)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금융지구 전경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샐러드볼(salad bowl)’이 연상됐다. 히잡을 쓴 여성들과 인도계 가족, 비즈니스 차림의 서양인, 단체로 움직이는 중국계 여행객이 같은 동선 위에서 자연스럽게 엉켜 걸었다. 짙은 향신료 냄새가 스쳐 지나갔고, 항공편 정보를 표시한 전광판에는 ‘도착’을 뜻하는 영어·말레이어·중국어·타밀어가 동시에 스쳐갔다. 서로 다른 인종이 제빛을 유지한 채 뒤섞이는 장면이다.

싱가포르는 여러 문화권이 한데 모여 형성된 도시국가다. 헌법상 국어는 말레이어지만 행정과 교육의 제1언어는 영어다. 원주민 말레이인을 존중하면서도 인종 간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는 선택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을 위해 표준 중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간체자를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어와 제도부터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도록 촘촘히 설계한 결과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에 자리한 힌두 사원 ‘스리 마리암만 사원’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에 자리한 힌두 사원 ‘스리 마리암만 사원’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 일정은 마침 인도 힌두교 축제인 디파발리 시즌과 겹쳤다. 시내 곳곳에 형형색색 조명이 켜졌고 도심에서 한 정거장만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리틀인디아는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만난 라비 쿠마르는 “싱가포르는 국경일이 많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라마단, 부처님오신날, 디파발리는 모두 공휴일”이라며 “기독교·이슬람·불교·힌두교가 동등하게 존중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문화 공존을 위한 강한 규율도 곳곳에서 작동한다. 인종차별 방지를 위한 법 집행은 엄격하고 혐오 표현은 예외 없이 규제 대상이다. 여권·신분증 사진을 흑백으로 통일하는 정책은 특정 인종이 더 도드라져 보이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다. 공립학교 교사 배정 역시 인종 비율을 맞춘다. 겉으로는 ‘자연스러운 공존’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교한 제도적 장치가 갈등을 미리 차단하고 있다.

▲마리나 베이 샌즈 전망대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도심의 야경 (김재은 기자 dove@)
▲마리나 베이 샌즈 전망대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도심의 야경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 경제도 이런 체계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1965년 독립 직후 제조업으로 기초 체력을 쌓았지만, 국토의 한계를 넘기 위해 금융 허브로 방향을 틀었다. 글로벌 금융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도심은 그 변화의 압축판이었다. 해가 지자 금융지구의 고층 빌딩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DBS, HSBC, 시티(Citi), 스탠다드차타드(SC) 등 글로벌 금융사들의 로고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국적도, 출신도 다른 금융사들이 한 구역에 밀집해 경쟁하면서도 공존하는 풍경은 이 도시가 왜 금융 혁신의 속도를 놓치지 않는지 설명하는 듯했다.

그러나 싱가포르가 ‘모두에게 열린 시장’인 것은 아니다. 인허가 기준을 높게 유지하고 규칙 위반에는 단호하게 대응한다. 자유의 문은 열어두되 규율을 강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다양한 국적의 금융사가 공존하면서도 금융 혁신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배경이다.

▲싱가포르 금융 중심지 한복판에 자리한 야시장 ‘라우 파 삿’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 금융 중심지 한복판에 자리한 야시장 ‘라우 파 삿’ (김재은 기자 dove@)

결제 현장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됐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작은 카페에서 우리나라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대자 별다른 지연 없이 ‘삑’ 하는 소리와 함께 결제가 끝났다. 점원은 당연하다는 듯 영수증을 건넸다. 이후 지하철로 이동할 때도 상황은 같았다.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한국 신용카드를 개찰구에 찍자 문이 열렸다. 낯선 도시의 대중교통인데도 마치 서울 지하철을 타는 듯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한국의 교통카드를 태그해 싱가포르 MRT를 탑승하는 모습 (김재은 기자 dove@)
▲한국의 교통카드를 태그해 싱가포르 MRT를 탑승하는 모습 (김재은 기자 dove@)

흥미로웠던 점은 간편결제였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에서 결제 국가를 싱가포르로 변경하자 화면에 ‘알리페이(Alipay)+’가 자동으로 연동됐다. 야시장에서 QR코드를 내미는 상인을 향해 한국에서 쓰던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스캔하자 결제가 완료됐다. 할인 혜택까지 적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국적과 통화의 벽’이 허물어진 도시라는 점을 실감케 했다.

▲네이버페이로 QR 결제하는 모습 (김재은 기자 dove@)
▲네이버페이로 QR 결제하는 모습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와 발행·운용기준을 정비하면서 최근에는 결제까지 가능해졌다. 그랩(grab)과 일부 거래소가 디지털 자산 기반 결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야시장에서 일하는 이크발 유소프씨는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려는 젊은 손님들이 아주 가끔 있다”면서도 “주 결제수단은 아니고 재미 삼아 해보는 정도”라고 말했다. 아직 일상화되진 않았지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분명히 빠르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베이 샌즈’ 전경.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마리나 베이 샌즈’ 전경. (김재은 기자 dove@)

싱가포르는 다문화적 개방성과 강한 규율, 그리고 빠른 기술 실험이 공존하는 도시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일상은 결제 시스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현지인, 관광객, 외국인 노동자가 같은 플랫폼에서 각기 다른 금융 서비스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샐러드볼’에 가까운 인구 구조와 유연한 경제 시스템은 새로운 기술과 규제를 실험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싱가포르의 성장 속도는 우연이 아니었다. 견고한 제도, 다양성이 만든 경쟁, 그리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책이 서로 맞물려 생겨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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