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설문에 따르면, 353명의 응답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시험 중 허가되지 않은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AI 이전부터 대필 과제와 시험은 늘 거론되던 문제였고, 표절 및 부정행위 또한 세계가 골머리를 앓던 오래된 교육의 딜레마였다. 하지만 행위자들은 그러한 행동이 진정한 정보의 습득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부정행위를 통해 점수는 얻을지언정, 진정으로 어떠한 정보와 교육을 얻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학생들은 적지 않은 수가 생성형 AI를 통한 일방적인 정보 습득을 진정한 교육이자 루트라고 여기고 있다. 어떠한 정보의 이해와 활용에 대한 개념과 정의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에게 인공지능은 더 이상 외부가 아니다. 그것은 일상의 연장선이며, 도구를 넘어 생각의 동반자로 기능한다. 문제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데 있다.
기술은 언제나 교육을 재편해왔다. 인쇄술이 학문을 특권층의 손에서 해방시켰다면, 인터넷은 지식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풀어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등장은 한 단계 더 급진적이다. AI는 사람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행동을 대체한다는 결정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인터넷은 여전히 인간의 탐색 능력과 비판적 선택을 전제로 했지만, 인공지능은 그 과정 자체를 생략한다. 검색은 더 이상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답을 복사해 붙이는 절차로 축소된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의 붕괴가 이제는 교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생각을 주고받는 공간이 사라진 채 대화 대신 출력된 문장만이 남는 현상인 것이다.
이 변화는 학생들의 이해력 개념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해란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이지만,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문장은 이미 완결된 형태다. 자고로 인간의 이해력과 비판적인 사고 능력은 모호성이라는 양분을 먹고 성장한다. 여러 변수가 뒤섞인 완벽하지 않은 설정값에서 이 능력이 더욱 자라나고 발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 모호함을 제거한 소독된 결과물만을 내놓는다.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완벽(하다고 생각)한 답안을 얻는 순간, 그들의 사고 근육은 점점 약해진다. 이제 학습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완성된 생각’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행위로 변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부정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지식의 사회적 구조가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다. 학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닌 사회적 재생산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학생들은 특정한 사고방식과 언어, 즉 문화자본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의 교실에서는 이 문화자본이 분산되고 있다. 교사는 더 이상 지식의 권위를 대표하지 못하고, 학생은 더 이상 배움의 수혜자가 아니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교사이자 지식의 보고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사회적 맥락을 가르치지 않는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비판, 논리, 감정, 공감의 감각을 생략하며 빠른 정답만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미디어 해독 능력 또한 변형된다. 정보의 출처나 맥락을 읽는 능력보다, 인공지능이 써준 문장이 믿을 만한지를 판단하는 감각이 더 중요해지지만, 현재로선 그 감각마저 소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부정행위가 충격적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윤리 위반이 아니라, 교육의 목적 자체를 다시 묻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학생들은 대필이나 표절을 하더라도 그것이 배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인공지능을 통한 생산을 진짜 학습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변화는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지식의 대체다. 배움은 더 이상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아니라, 외부의 계산 과정을 신뢰하는 행위로 바뀌었다. 학습이 내적 성장의 과정에서 기술적 효율의 과정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육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교실의 경계를 흐리고, 교수자와 학습자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많은 대학이 인공지능의 활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은 놓치고 있다. 인터넷 초창기에 위키미디어를 금지하던 시절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단발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하는 것보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문해력의 구축이다. 학생들이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되 그 한계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력은 이제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해력은 문장을 둘러싼 기술적 환경을 읽는 능력, 문장을 만든 알고리즘의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늘날의 학생이 직면한 과제는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어떤 맥락과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현대의 지식 사회가 공간과 시간의 압축 속에서 작동한다고 말했다. 정보는 즉각적으로 생성되고, 즉각적으로 사라진다. 인공지능을 통해 학생들은 언제든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문장이 만들어진 배경과 윤리적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교육 현장의 풍경도 달라졌다. 학생들은 토론 대신 인공지능 명령문을 공유하고, 직접 사유한 에세이 대신 기계가 쓴 글을 편집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흥미로운 시도도 나타난다. 일부 교육자들은 인공지능을 교보재로 활용하며 학생들에게 인공지능의 오류를 찾아내라는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수업 전략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회복시키기 위한 시도다. 인간이 기계의 출력을 의심하는 순간 비로소 이해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공동체는 함께 존재하며 함께 질문함으로써 성장한다. 교육 역시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
지금의 교육은 두 갈래 길 위에 서 있다. 하나는 빠르고 효율적인 정답의 복제를 향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의 재구성을 향한 길이다. 전자가 편리함을 준다면, 후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인공지능의 사용을 막을 수는 없어도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학생을 길러낼 수는 있다. 그것이 새로운 문해력의 출발점이다. 기술이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오히려 사고를 다시 가르쳐야 한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인공지능을 통한 부정행위는 행정적인 딜레마보다 더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의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에 온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교육은 점점 더 기술의 하청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을 끝내 놓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은 우리의 ‘적’이 아닌, 다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새로운 창구가 될 수도 있다.
저자 소개
반휘은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와 신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정책 컨설턴트이자 저술가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디지털 인문학, 미디어철학, AI윤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을 마친 후, 뉴욕 유엔본부의 (전)기술특사실 (현)디지털과 신기술사무국(전 Office of the Secretary-General’s Envoy on Technology, 현 Office for Digital and Emerging Technologies)에서 AI 정책 연구와 분석을 주도했다. 안보, 에너지, 노동, 건강, 법의 지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거버넌스를 위한 전략적 프레임워크를 개발했으며 20회 이상의 고위급 자문 회의를 주관하며 AI 정책을 구체화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주요 산업 리더들과 협력하여 AI 거버넌스의 글로벌 표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반휘은은, 디지털 윤리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학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