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융 전환, 각종 금융사기 확산 속 실물 교구로 금융교육
저축·가계부·미션·모의투자까지⋯은행에 용돈 이체 기능도

요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접하는 것은 동전이 아니다. 클릭 한 번으로 열리는 금융서비스다. 보이스피싱과 고수익 미끼투자, 사이버도박이 아이들의 일상까지 파고들었지만 학교와 가정에서의 금융교육은 여전히 구호에 그치고 있다. 그 공간을 메우겠다며 20대 대학생이 '어린이용 스마트 저금통' 기부 캠페인을 통해 민간 금융교육 실험에 나섰다.
김동현 애드벌룬 대표가 내놓은 해법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집 거실 한 쪽에 놓이는 작은 저금통이다. 김 대표는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 전 국민 금 모으기 영상을 접한 후 '지금 세대가 할 수 있는 금 모으기는 지식과 금융문해력'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부모 세대가 금반지를 내놓아 나랏빚을 갚았다면 어린이와 학부모에게 금융교육 도구를 나누는 방식으로그 정신을 잇고 싶다”고 했다.
김 대표가 추진 중인 '다시 힘내자 대한민국-1500만 어린이·학부모 선한부자 만들기' 캠페인은 퓨처뱅크 스마트 저금통 '삐뽀' 10만 대를 금융교육 사각지대에 보급하는 게 목표다.
기업이나 시민이 삐뽀를 구입하면 동일한 수량을 취약계층 아동에게 기부하는 '1+1' 방식으로 진행된다. 총 100억 원 규모에 해당하는 이 사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선 적지 않은 부담이다.
김 대표는 "IMF 세대의 희생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금융문해력 나눔 운동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삐뽀는 겉으로 보면 단순한 전자 저금통이지만 전용 애플리케이션(앱)과 연결되면 어린이용 금융 교구가 된다. 아이는 앱에서 저축 목표를 세운 후 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며 달성 현황을 확인한다. 용돈 사용 내역을 기록하는 가계부 기능과 집안일을 돕고 보상을 받는 미션 기능을 통해 '일과 소득의 연결'을 경험한다. 모의 투자와 기부 기능도 탑재해 저축·소비·투자·나눔으로 이어지는 돈의 흐름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익히도록 돕는다.
아이는 앱에서 제공되는 홈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용돈을 모으고, 저축한 돈은 실제 은행으로 이체된다. 증권계좌를 통해 주식 시장에 투자로 연결될 수도 있다. 자본시장에 실제로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 아이템의 출발점은 김 대표의 학창 시절 경험이다. 그는 중학생 때 아날로그 저금통에 모은 돈을 기부단체에 전달한 일을 계기로 "저금과 기부, 공부를 동시에 하게 만드는 도구를 만들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품었다고 했다.
이후 아이디어를 다듬어 관련 특허를 등록했고 대학 입학 뒤에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이를 실제 상품으로 구체화했다.
스마트 저금통 형식은 ‘생활 속 금융교육’을 강조해 온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의 금융교육은 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일회성 특강이나 금융사가 주최하는 퀴즈대회, 모의투자 이벤트에 치우쳐 있었다. 정작 아이들이 돈을 쓰고 버는 무대는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 게임 결제 화면인데 이 일상의 장면을 교육과 연결하는 장치는 부족했다. 삐뽀는 이 간극을 집안에서부터 줄여보겠다는 취지로 탄생했다.
예컨대 초등학생 자녀가 게임 아이템을 사고 싶다고 하면 부모는 아이와 함께 앱 화면을 보며 이번 달 용돈에서 얼마를 저축하고 얼마를 쓸지 정한다. 자전거·운동화·가족 외식과 같은 목표를 세우고 저축 계획을 짠 뒤 목표 달성 여부를 함께 확인한다. 과정 자체가 금융교육이 되는 구조다.
민간 교구 하나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금융교육 예산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정규 교육과정에서 경제·금융 관련 과목은 선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지역과 학교에 따라 교육 기회가 크게 갈리는 금융교육 격차도 뚜렷하다.
민간 캠페인이 자칫 상품 홍보로만 비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다. 일부 금융교육 교구나 앱은 교육보다는 마케팅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나 현장의 금융교육 공백을 고려하면 애드벌룬의 이러한 시도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제도와 예산의 속도가 디지털 금융 리스크의 확산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아이들은 스스로 시장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어서다. 공적 체계가 완비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만 반복하기에는 '골든타임'이 길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보이스피싱이나 고수익을 미끼 삼은 서비스가 초등학생 일상까지 들어왔지만 정작 학교와 집에서는 금융 이야기를 찬찬히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며 "삐뽀를 통해 최소한 돈 이야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꺼내 볼 수 있는 아이들이 조금씩이라도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