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사실상 ‘배상금 0원’ 완승을 거두자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즉각 불붙었다. 정부는 “국가 재정과 금융감독 주권을 지켜낸 대외 성과”라고 강조한 반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승소를 반대하던 민주당은 뒤늦게 숟가락을 얹지 말라”고 맞받았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는 18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약 3173억 원)의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한 2022년 8월 중재 판정을 전부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아울러 취소 절차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지출한 소송 비용 약 73억 원을 론스타가 30일 이내에 지급하라고 명했다. 이로써 환율을 반영하면 4000억 원 규모에 달하던 정부의 배상 책임은 모두 소급해 사라졌다.
이번 분쟁은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51.02%를 1조3834억 원에 인수한 뒤,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 원에 되판 과정에서 비롯됐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절차를 지연시키고 매각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해 손해를 봤다며 2012년 11월 ICSID에 46억7950만 달러(약 6조80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중재판정부는 2022년 정부의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외환카드 주가조작 등 론스타의 책임을 반영해 청구액의 4.6%인 2억1650만 달러만 배상하라고 판정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론스타 양측은 모두 이 판정에 불복해 취소 절차를 밟았다. 정부는 중재판정부가 하나금융–론스타 간 국제상업회의소(ICC) 상사중재 판정문 등을 증거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한국 측의 반대신문권과 변론권을 제한해 ICSID 협약상 절차 규정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중재 절차 과정에서 적법 절차 위반이 상당히 심각하게 발생한 점이 취소위원회가 한국 정부 신청을 받아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ICSID 통계상 1972년 이후 503건의 판정 가운데 전부 취소된 사례는 이번까지 8건뿐일 정도로 이례적인 결과다.
정부는 이를 새 정부의 대외 성과로 부각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 긴급 브리핑에서 “이번 승소로 정부의 배상 책임은 모두 소급해 소멸됐다”며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이자 대한민국의 금융감독 주권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 한미·한중·한일 정상 외교, 관세 협상 타결에 이어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라고 평가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내란 사태 이후 대통령과 장관이 모두 부재한 상황에서 국제법무국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구술 변론을 진행한 결과”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취소 신청을 처음 제기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공을 가로챘다며 더불어민주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한 전 대표는 법무부 장관이던 2023년, 판정부의 월권과 절차 규칙 위반을 근거로 판정 취소 및 집행정지를 신청한 당사자다. 그는 승소 소식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론스타 소송 대한민국 승소!”라고 적은 뒤 “당시 민주당은 승소 가능성을 트집 잡으며 강력히 반대했다. 뒤늦게 숟가락 얹으려 하지 말고 당시 이 소송을 반대한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당시 취소 신청 추진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송기호 현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ICSID 취소 절차에서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적 결론이 판정으로 나올 가능성은 ‘제로(0)’”라고 밝혔고 박용진 전 의원은 “법무부가 ISDS 소송으로 400억 원 넘는 돈을 로펌에 썼다”며 “로펌만 배 불린 행정 행위”라고 비판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