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인공지능(AI)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시장과 소득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신약개발과 임상, 제조·품질관리, 영업·마케팅뿐 아니라 병원 진료까지 AI 기반 업무가 확산되며 ‘단순직 감소, 고숙련 전문직 증가’라는 양극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17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와 딜로이트는 제약 산업의 AI 도입률이 2023년 28%에서 2025년 45%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개발(R&D) 부문에서는 변화가 가장 급격하다. AI 기반 신약개발 기술을 도입한 기업들은 후보물질 탐색 과정에서 실험 횟수가 평균 40~60% 줄었고, 탐색 기간도 기존 2~3년에서 6~12개월로 단축됐다. 단순 실험 중심의 직무는 축소되는 반면 AI 모델링, 생물정보학, 데이터 사이언스 등 고급 인력은 크게 늘고 있다.
국내 주요 제약사의 AI·데이터 채용 규모는 최근 2년간 평균 70% 증가했으며 연봉 수준도 1억~1억5000만 원으로 상승하고 있다.
제조·품질관리 부문에서도 AI·자동화가 핵심 키워드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공정의 자동화 라인 비중은 2023년 35%에서 올해 50%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단순 생산직은 기업별로 10~15% 축소됐고 대신 공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AI 공정 엔지니어’와 예측 품질관리(PAT) 전문가 등 새로운 직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영업·마케팅 분야의 재편도 본격화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는 AI 기반 고객 타깃·처방분석 도입 이후 의약품영업직(MR)의 업무 효율이 20~30% 향상되자 조직을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실제 미국·유럽에서는 MR 인력을 약 10% 축소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반대로 디지털 마케팅, 데이터 세일즈 등 AI 친화 직무는 늘어나는 추세다.
의료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상급병원 30곳 중 70% 이상이 AI 판독 솔루션을 도입했다. 영상 판독 보조 인력은 감소하는 반면 AI 솔루션을 운영·검증하고 전자의무기록(EMR)과 통합하는 데이터 품질관리 직군은 신설되는 분위기다. 전문의 중심의 고소득 구조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6~12개월 동안 산업 전반에서 단순·반복 업무는 5~15% 축소되고, AI·데이터 기반 고급 인력은 연 10~20%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AI 활용 능력을 갖춘 인력과 그렇지 못한 인력 간 임금 격차는 연 10% 이상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은 “AI의 광범위한 도입에 대비하려면 기술 개발 투자와 함께 인공지능 문해력 제고, 사회적 안전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며 “노동시장 역시 경직성이 유지되면 자동화가 과도하게 진행될 우려가 있어 사회안전망 강화와 함께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