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의 삼성’ 정신은 수십 년간 삼성의 성장 원동력이었다. 인사와 노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신상필벌의 문화는 위기 때마다 조직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 강점이 희미해졌다는 우려에 직면했다. 효율적인 의사결정보다 보고 형식과 절차가 앞서고, 책임보다 방어가 우선시되는 조직 문화가 굳어졌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서초에 보고할 때는 초등학생 수준으로 알기 쉽게 써야 한다’는 한 내부 엔지니어의 폭로글이 화제가 되면서 과도한 보고 체계와 불필요한 관료주의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삼성이 이번에 내린 결단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특히 기술적·실적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지금이 변화에 속도를 내기 가장 좋은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그간 고전했던 엔비디아의 HBM 공급망 진입에 최근 성공하면서 기술력 논란을 완전히 불식시켰다. 실적 역시 반등세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 12조2000억 원을 기록하며 5분기 만에 10조 원대 이익을 회복했다. 메모리는 사상 최고 분기 매출을 냈고, 스마트폰 사업 역시 오름세를 이어갔다. 성장할 때일수록 체질을 다지고, 조직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이제 눈길은 이르면 다음 주 예정된 사장단 인사와 조직 개편으로 향한다. 앞선 인사가 그룹의 방향성을 책임진다면, 사장단은 실제 현장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한다. 무엇보다 제조업의 핵심인 기술력과 실행력을 되살릴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임원들에게 ‘사즉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안도감으로 이어지는 순간 조직은 다시 정체된다. ‘관리의 삼성’이 가진 체계와 원칙을 토대로, 속도와 혁신, 책임과 자율이 공존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이 회장의 결단이 다시 한 번 증명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