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타결, 경제효과 연결이 과제
공급망 대비 등 정책 뒷받침 필요

지난주 경주에서 막을 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 경제와 외교의 방향을 바꾸는 분수령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회의에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경제 질서의 참여자가 아니라 조율자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글로벌 관계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균형 있게 바로잡아 가는 위치를 마땅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2005년 부산 APEC이 한국의 세계시장 진입을 선언한 자리였다면, 이번 경주 APEC은 그동안 쌓아온 경제력과 기술력, 그리고 외교적 신뢰를 토대로 글로벌 리더십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데뷔 무대였다.
특히 기술·문화·경제·정책기획 능력을 아우르는 글로벌 선도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외교적 영향력뿐 아니라 경제협력의 중심국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한미와 한중 정상회담은 균형 외교의 결정판으로 봐도 무방하다. 경주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APEC의 성공과 맞물려 또 다른 의미를 남겼다.
양국은 오랜 논의 끝에 한국산 수출품에 부과되는 관세를 평균 15% 수준으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동시에 한국은 향후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경제 동맹 관계를 실질적 파트너십으로 끌어올렸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마스가(MASGA)’로 불리는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에, 나머지 2000억 달러는 현금 투자 형태로 구성된다. 특히 현금 투자 2000억 달러는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투입돼 우리 외환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정키로 했다.
이번 협상 타결은 양국 간 통상 마찰의 완화를 넘어,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한국의 핵심 산업이 미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혔다. 그리고 이번 합의로 양국이 전략적 통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중 정상회담은 한국 외교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미국를 향한 밀착 행보를 경계하고 있지만, 동시에 경제협력 복원을 희망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경제 관계 정상화와 미래 지향적 협력 확대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 회담의 진정한 의미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실행의 단계로 옮겼다는 데 있다. 그리고 단순히 두 강대국의 중간에 서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통상·안보의 세 축을 분리 관리하면서 스스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외교·통상적 성과가 실제 한국 경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다.
외교 성과를 경제적 파급효과로 전환하는 게 과제다. 경주 APEC을 통한 글로벌 리더십 부각,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인한 수출 안정성 확보, 한중 관계 복원 시도의 세 축은 한국 경제에 중층적 파급효과를 미칠 전망이다.
첫째, 한국은 중견국을 넘어 글로벌 리더 국가로 자리 잡을 기회를 맞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규범 설정을 주도함으로써, 외교·경제의 질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둘째, 미국과의 합의는 한국 기업의 대미 진출 불확실성을 줄이고,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와 투자 유치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셋째, 중국과의 관계 조정은 한국 경제의 다변화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여기에 더해 아세안·중남미 등 새로운 시장 개척은 한국 수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다.
다만 이 모든 변화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내실 있는 정책 뒷받침이 필요하다. 외교적 이벤트의 성공이 곧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업 구조 혁신, 기술 고도화, 내수 확대 등 체질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APEC의 성공적 개최를 비롯해 한미 관세협상 타결, 한중 관계 복원은 모두 한국이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외교 무대의 화려한 조명 뒤에는 산업현장의 경쟁, 기술 전쟁, 글로벌 공급망의 격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련의 정상외교 성과를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려면 정부는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기업은 혁신을 가속하며, 국민은 미래 비전에 공감해야 한다.
경주 APEC의 성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국이 세계 속의 리더 국가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다시 강대국 사이의 틈새로 밀려날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