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꿈의 지수로 여겨졌던 코스피 4000시대가 현실이 되면서 국내 증시에 대한 저평가 꼬리표를 떼고 ‘오천피’(코스피 5000)로 나아가리라는 시장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수의 가파른 상승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낙관하기 어려운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져 있다.
최근의 코스피 상승은 소수의 대형주, 특히 반도체 업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한 결과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반도체라는 강력한 성장 동력을 등에 업고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전체 지수를 견인했다. 시장의 활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증시 전반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반도체 외 다른 산업군, 일례로 오랜 기간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온 화학, 철강 등의 업종은 여전히 고전하는 모습이다. 특정 업종의 부진은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결국 증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수급 측면에서의 불안정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랠리의 주역은 외국인 투자자였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순매도를 이어가는 흐름을 보였다. 지수가 오르는데도 개인들이 시장을 떠나는 현상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단타 위주’, ‘테마성 매매’ 성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장기 투자를 유도할 만한 견고한 투자 환경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외국인 자금의 유입은 언제든 방향을 틀 수 있는 ‘뜨거운 돈’이라는 점에서, 개인투자자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시장의 펀더멘털 개선이 시급하다.
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오너 중심의 의사 결정, 낮은 배당 성향, 불투명한 내부거래 등은 해외 투자자에게 ‘위험 요인’으로 인식된다. 정부 여당이 지속 추진한 상법 개정 등은 재계에 부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시장 신뢰를 높이는 길이며 실제 코스피 상승의 밑바탕이 됐다. 이와 관련해 증권가는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 기조가 이어질 경우 코스피 4000 중반, 높게는 5000선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점친다.
특정 업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새로운 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이차전지, 바이오, AI와 같은 신성장 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중소·벤처기업이 코스피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 엔진을 장착하는 일이다.
개인투자자의 신뢰 회복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증시의 건강한 성장은 결국 다수의 참여자가 ‘이 시장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불공정 거래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공매도 제도 개선 등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아울러 투자자 교육을 강화해 개인투자자들이 맹목적인 추격 매매가 아닌, 기업의 가치를 분석하고 투자하는 합리적인 투자자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코스피 5000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기 자금의 힘이 아닌 신뢰와 구조 개선의 힘이 필요하다. 시장의 펀더멘털을 강화하고, 참여자들의 신뢰를 얻으며,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질적인 변화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시장의 다음 도약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 ‘선진 자본시장’이 코스피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