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우리가 꿈꿔야 할 ‘훈민지능’

입력 2025-11-04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정연섭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과학칼럼니스트

기원전 10세기쯤에 발명된 페니키아 문자에 비하면 한글은 늦둥이다. 그러나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제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는 훈민정음 서문은 감동적이다. 출장 온 외국 기술자가 한글 간판을 읽어 놀라서 물어보면 오기 전에 한글 읽는 법을 잠시 배웠다고 했다. 한글이 과학적으로 창제된 덕분이다.

현대인은 의문을 해소하고 감정을 표현하려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인공지능은 조리 있게 답변하고 다양한 그림이나 동영상을 내놓는다. 학습 자료 탓에 편견을 간혹 보이지만 인공지능은 범지구적이라 굳이 국산화가 필요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통신료처럼 나가는 인공지능 구독료 시장에 군침이 돈다. 인공지능 기술과 우리의 능력을 알 때 소버린 인공지능 개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인공지능 성능은 방대한 자료에 의한 학습보다는 태생적으로 결정된다. 핵심 성능은 사용자 지시를 이해하고 다음에 나올 어휘, 그림을 예측하는 능력이다. 인공지능은 다양한 어휘 후보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고른다. 즉 다음 어휘나 광경은 확률분포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점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 원리로 발음기관과 천지인을 찾았듯이 인공지능 발명가들도 생성형 인공지능에서 확률분포를 끄집어냈다.

확률분포는 지도의 등고선처럼 생겼다. 등고선은 평지, 산봉우리, 계곡을 구분한다. 확률분포 제작 방법은 2024년 홉필드 교수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주었고 매년 새로운 방법이 제안되고 있다. 최근에는 확산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지도 등고선은 인공위성 사진 덕분에 산을 허물었다가 복원하는 방식으로 얻지 않지만, 인공지능 확산모델은 물체를 낱낱이 해체하고 복원하면서 확률분포를 얻는 방법이다. 고온에 녹아내린 그림을 그린 초현실 화가 달리(Dalle)의 화풍이다. 오픈AI사가 내놓은 인공지능 달리는 그의 이름을 땄고 인공지능 미드저니도 이 방법을 쓰고 있다.

일단 확률분포가 만들어지고 나며 인공지능은 큰 걸음으로 사용자가 지정한 주소로 이동하고 가장 작은 걸음으로 가까운 계곡까지 이동하며 풍경을 얻어낸다. 이 풍경은 학습한 풍경일 수도 있고 학습하지 않는 창조적 풍경일 수도 있다. 확률분포에는 금강산도 알프스도 있다. 세계 여행은 지구 표면으로 제약되지만, 확률분포 위를 걷는 여행길은 꿈속처럼 제약이 없다. 황량한 화성 표면에서 말을 타거나, 바닷속에서 인어공주를 만날 수도 있다. 인공지능용 확률분포는 새로운 광경을 뽑아낼 수 있는 화수분이다.

상상의 광경은 장점이면서도 단점이 되기도 한다. 상상은 즐겁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초등 산수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돈 계산을 할 수 있지만 우주항공 사업을 할 수 없듯이, 자연법칙을 모르는 인공지능도 말하고 그릴 수는 있겠지만 생산라인에 투입되기는 어렵다.

현실에 벗어난 광경을 막으려면 자연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확률분포를 제작해야 한다. 확산모델은 물체를 완전히 분해하여 조립하기보다는 생명체, 세포 형태를 유지한 채 얻어져야 한다. 화가 달리처럼 물체를 녹이더라도 정체성은 훼손되지 않을 정도라야 한다.

기술 진보가 빨라 혼돈 속에 놓인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질서가 있다, 우리도 집현전에 모여 머리를 맞대면 ‘훈민지능’을 꿈꿀 수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겨울 연금송 올해도…첫눈·크리스마스니까·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해시태그]
  • 대통령실 "정부·ARM MOU 체결…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 양성" [종합]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6,112,000
    • -1.4%
    • 이더리움
    • 4,653,000
    • -1.69%
    • 비트코인 캐시
    • 850,000
    • -1.05%
    • 리플
    • 3,068
    • -3.94%
    • 솔라나
    • 204,500
    • -3.86%
    • 에이다
    • 640
    • -3.18%
    • 트론
    • 426
    • +1.91%
    • 스텔라루멘
    • 371
    • -1.85%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690
    • -1.38%
    • 체인링크
    • 20,900
    • -2.97%
    • 샌드박스
    • 217
    • -4.4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