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관세협상, APEC 계기로 타결되기는 좀 어렵다"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28일까지만 해도 대통령실과 정부 내 기류는 무거웠다. 7월 말 잠정 합의 이후 석 달 넘게 이어진 후속 협상에서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방식을 놓고 양국이 현금 투자 비율, 수익 배분 구조, 투자처 선정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정부는 미국과 무려 23차례 장관급 회의를 열었고, 일일이 세기 어려운 수십 차례의 실무급 조율을 통해 해법을 모색했다. 정상회담 직전에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까지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 이견을 조율했지만 끝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귀국했다.
하지만 29일 경주에서 마주 앉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단 87분 만에 협상의 판을 바꿔놓았다. 시작부터 조짐은 좋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방명록에 ‘아 위대한 정상회담의 아름다운 시작’이라는 짧지만 고무적인 한마디를 남겼다”며 “회의 내내 두 정상 간 돈독한 유대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중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며 친근함을 보이는 등 이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곧 한미 관세협상 전격 타결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양국은 이날 회담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와 관세 인하에 합의했다. 핵심은 한국이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년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를 단계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정책실장은 "우리가 양보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며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국익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원칙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합의에는 일본(미·일 관세 합의)에는 없는 연간 투자 한도가 명시됐다"며 "우리가 집념을 갖고 주장한 내용이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지난 7월 미국과 55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합의를 체결했지만, 투자 한도나 집행 속도에 대한 규정을 포함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