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 질서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자유무역’이라는 고속도로 곳곳에 이제 ‘관세 장벽’과 ‘수출 통제’라는 바리케이드가 쳐진 형국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자유무역협정(FTA) 허브’ 전략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칠레를 시작으로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거대 경제권과 촘촘한 무역망을 깔며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 낡은 지도만으로는 급변하는 통상 환경의 안개를 헤쳐나가기 벅차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은 물론 필요한 수순이다. 하지만 새 항로를 뚫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기존 항로를 재정비하는 일이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FTA 2.0’이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국가와 도장을 찍는 ‘양적 팽창’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맺은 수많은 FTA를 ‘질적으로 전환’하는 사실상의 ‘전면 재정립’을 뜻한다. 과거 FTA가 관세 인하와 시장 개방에 초점을 맞춘 ‘1.0’ 버전이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통상 의제를 반영해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새로운 통상 의제의 핵심은 단연 ‘경제 안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공급망을 무기화했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핵심 광물, 소재, 부품은 언제든 우리의 숨통을 조일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됐다.
따라서 FTA 2.0에는 이러한 핵심 품목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과 다변화 방안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또한, 디지털 전환에 따른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인공지능(AI) 관련 규범, 그리고 기술 주권 확보 방안 역시 기존 FTA의 틀 안에서 새롭게 논의하고 반영해야 할 핵심 과제다. 국익을 극대화할 정교한 로드맵이 시급하다.
이제 무역은 경제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안보이자 기술이며 생존 그 자체가 됐다. 동맹, 기술, 자원이 복잡하게 얽힌 새로운 판이 이미 짜였다.
낡은 나침반과 빛바랜 지도로는 이 거친 바다를 결코 헤쳐나갈 수 없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무역 루트, 그 활로는 FTA 2.0이란 정교한 새 지도를 얼마나 빨리 완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