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정이 기업의 배임죄를 폐지하는 대신 손해액의 최대 5배를 징벌적 손해 배상으로 물리는 등의 보완 입법에 나서면서 산업계의 우려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형사처벌 축소로 기업의 경영 리스크는 줄이고 민사책임 강화로 실질적인 제재 수단을 확보하는 구조지만, 금전적 책임 강화로 사실상 또 다른 기업 옥죄기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당 법안이 현실화하면 중소기업들의 경우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금융권도 법안 추진에 촉각을 기울일 전망이다.
21일 전문가들은 당정이 재계의 숙원으로 꼽혀온 배임죄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기업들이 족쇄를 벗게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대안 수단으로 마련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모든 기업에 일괄 적용하는 데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채운 서강대 명예교수는 "5배는 적지 않은 수치다.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벌칙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급진적 적용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법률 대응력이 약한 중소기업을 고려하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동윤 동아대 교수는 "문제는 무고가 발생했을 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법률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자체적인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다르다"라며 "특히 소상공인들은 본인이 직접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법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법률적인 조력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악의적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에게 배상 책임을 부과할 경우를 감안하면 더욱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영계도 손해를 초과하는 징벌적 배상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앞서 경제단체들은 정치권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움직임에 "악의적 의도를 가진 소비자나 업체가 소송 제기를 빌미로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포괄적인 규정으로 모든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글로벌 경쟁에서 고군분투하는 대기업은 물론 소송 대응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영 활동 전반에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저해하고 이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권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상공인의 연체율이 계속 증가하는 등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향후 법안이 시행되면 자영업자들에 부담이 고스란히 전가 될 수 있다"면서 "자금 흐름이 악화하면 연체가 발생하고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금융권도 리스크를 공동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