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 70년 만에 폐지될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5-10-2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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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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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해도 죄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계속 반복되어 온 논쟁이죠. 형법 제307조 제1항,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그 중심에 있는데요.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이 조항의 폐지를 공식 추진하면서 70년 넘게 유지된 이 조항의 운명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1953년 제정, 문장 하나 안 바뀐 법

우리나라 형법은 1953년 9월 18일 제정돼 1954년 10월 3일부터 시행됐는데요.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죠.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일본강점기 일본 형법(1907년 제정) 제230조를 사실상 그대로 옮긴 조항인데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자는 그 사실의 진위와 관계없이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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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예외’가 있다

다만 일본에는 곧이어 제230조의2 ‘공익 목적과 진실성이 입증되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붙어 있는데요.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실이고 목적이 공익을 위한 것이며 그 사실이 진실로 증명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이 조항 덕분에 언론 보도나 공익 제보는 실무상 대부분 면책되죠. 법은 남아 있지만, 실제 처벌은 거의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일본 경찰청의 ‘레이와 3년의 범죄(2021)’ 보고서에 따르면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인원은 연 140~180명 수준으로 대부분 개인 간 다툼이 대부분입니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의 ‘일본 및 여러 외국에서의 모욕죄 등의 개요(2022)’에서도 해당 법 조항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실무상 ‘표현의 자유’ 보장 범위가 넓어 형사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이죠.

한국도 형법 제310조를 통해 비슷한 예외를 두고 있는데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말입니다.


(출처=오픈AI 챗GPT)
(출처=오픈AI 챗GPT)


공익이면 면책된다? “현실은 다르다”

현행 형법 제310조는 ‘공익을 위한 사실 적시’는 위법하지 않다고 명시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인정 범위가 좁은데요.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 사실의 공공성, 표현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죠.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 사실을 폭로했다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거나 공직자 비리를 고발한 내부고발자가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수백 건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이 형사절차로 이어지죠. 법원 통계를 분석한 로웨이브(Lawwave)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은 총 2556건(피고인 3026명)으로 집계됐는데요. 같은 기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6211건(피고인 7295명)이었죠. 최근 10년간 매년 200~450건 수준의 형사판결이 실제로 선고된 셈입니다.

그중 무죄 비율은 11~20%인 반면 유죄 비율은 79~89%에 달하는데요.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유죄 비율인 81~91%와 별다르지 않죠. 진실한 사실을 말했음에도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구조가 수치로 확인된 건데요. 해당 조항의 처벌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활발한 이유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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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한 사람이 피고인 되는 사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조항의 폐지를 직접 추진 중인데요. 9월 9일 형법 제307조 제1항을 삭제하고 정보통신망법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제외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죠. 그는 “공익제보자, 성범죄 피해자, 언론인까지 진실을 알린 사람들이 오히려 피고인이 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이 조항의 폐지를 권고했는데요. “명예훼손 사건 중 다수가 사실적시형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듬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도“진실 적시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폐지하라”고 한국 정부에 같은 취지의 권고를 내렸죠. 국내외 인권기구 모두 “진실을 말한 사람을 처벌하는 구조는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은 겁니다.


(뉴시스)
(뉴시스)


“비방 목적의 폭로는 여전히 범죄”

하지만 폐지에 대한 반대도 뚜렷한데요. 일각에서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비방 목적이 있는 폭로는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하죠.

특히 온라인에서의 ‘사실 폭로’가 신상털이와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는 현실을 우려합니다. 헌법재판소도 2021년 2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요.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이 인격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타인의 명예와 권리를 그 한계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명예훼손이 사적 제재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는데요. 결국 헌재는 개인의 명예 보호라는 법익에 더 큰 무게를 두며 형법상 처벌 조항이 정당하다고 봤죠.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도 추진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폐지안과 함께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추진 중인데요. 악의적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한 언론사나 유튜버, 플랫폼 운영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다섯 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우는 내용입니다. 민주당은 이를 “허위는 강하게 제재하고, 진실은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했죠.

또한 언론 보도를 막기 위한 ‘입틀막 소송(SLAPP)’을 방지하는 조항도 포함했는데요. 법원이 봉쇄 소송으로 판단하면 즉시 소송을 중단하고 소송을 제기한 쪽이 피고의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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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묵은 법, 이번엔 바뀔까?

이 조항이 만들어진 1953년과 현재는 너무나 다릅니다. 지금은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의견을 내고 잘못된 권력을 폭로할 수 있는 시대죠. 그럼에도 ‘진실을 말해도 형사처벌을 받는 나라’라는 사실은 표현의 자유 논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허위정보는 다른 법으로도 충분히 규제 가능하다”며 “진실을 밝힌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폐지 찬성 측의 입장이 힘을 얻는 이유인데요. 하지만 폐지 반대 측의 “사실 폭로가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형사처벌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쉬이여길 수 없죠.

70년 넘게 유지된 이 조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아니면 또 한 번 논의만 반복될지. 답은 이번 정기국회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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