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 붕당 450년, 아직 끝나지 않았다…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25-10-22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국가개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김기찬 프레지던트대학교 국제총장, 세계중소기업학회 의장 (출처=본인 제공)
▲김기찬 프레지던트대학교 국제총장, 세계중소기업학회 의장 (출처=본인 제공)
1575년, 조선은 사림파가 성리학적 명분과 인사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분열되면서 붕당시대를 열었다. 올해는 이로부터 4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붕당(朋黨)'은 본래 '같은 뜻을 가진 벗들의 결사'를 의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말싸움이 칼싸움이 되고, 논쟁이 숙청으로 번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붕당정치는 오늘의 정치에까지 이르고 있다. 정치는 진영논리, 조직은 줄서기 문화, 학계는 붕당에 편승하여 극단적으로 죽기살기로 싸우는 파벌이 횡행하고 있다.

조선의 붕당정치는 선조 8년(1575년), 당시 인재 추천 인사권을 놓고 사림파 내부가 갈라진 데서 비롯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붕당의 ‘정치철학 논쟁’은 ‘권력 다툼’으로 변질되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대 당파를 숙청하는 정치보복의 구조적 악순환이 이어졌다. 결국 붕당은 조선 지식사회와, 나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가장 큰 비극이 되었다.

부패한 훈구파를 타도하고 등장한 사림파는 '도덕혁명'을 내걸었지만, 결국 정책이념을 무기로 한 정치투쟁의 장이 되고 말았다. 훈구의 부패를 혁신하기는커녕, 권력을 잡은 붕당의 ‘승자독식’은 일시적 권력과 부귀를 누렸지만 많은 권력자들이 귀양을 가거나 사약을 받고 말았다.

이후 붕당은 점점 세분화되어 남인·북인, 노론·소론으로 이른바 4색 당파를 만들었다. 결국 조선 후기는 남인–북인–노론–소론 4대 붕당이 교차하면서,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숙청과 보복의 순환정치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혁신과 기회 포착에는 무감각해진 관료를 양산했고, 그 최대 피해자는 죄 없는 백성들이었다. 변화와 혁신을 향한 기업가정신의 적은 관료주의였다.

붕당은 위정척사와 척화사상으로 뭉쳐 있었다.

‘바른 도를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위정척사 논리로, 외세와의 협력을 거부하며 ‘화친’을 물리친다는 척화사상은 근대화의 기회를 놓치고 외세와의 교류·통상을 단절시켰다.

대표적으로 국내개혁에 몰두한 대원군이 낳은 조선의 비극이 그것이었다. 척화사상으로 문을 닫은 대원군은 국내개혁에는 성공하는 듯했으나, 해외의 변화를 외면함으로써 국가를 대실패로 이끌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아직도 붕당 450년은 끝나지 않았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역사는 협력할 때 진보했고, 갈등할 때 퇴보했다. 한국 사회는 지금도 편을 가르고 싸우는 정치에 머물러 있다.

결국 이러한 정치와 경제는 ‘기회에 무감각해진 관료주의’로 인해 한국경제를 3만 불 선진국 함정에 빠뜨렸다. 기회에 무감각해지고, 현재를 지키기 위해 위험 감수를 극도로 피하는 관료주의가 곳곳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해외 성장기회보다 국내 복지를 추구하면서, 한국 중소기업의 ‘갈라파고스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회에 무감각해진 사회의 위기’이다. 이때 일본의 3만 달러 선진국 함정에서 한국의 교훈을 만들어가야 한다.

일본 역시 3만 달러 선진국 함정 속에서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 고도성장의 끝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세계가 부러워하던 경제대국이었다. 세계 2위의 GDP, 초고속 성장을 이룬 기술대국, 그리고 높은 국민소득.

그러나 정점 이후 일본은 ‘3만 달러의 벽’을 넘지 못한 채 30여 년의 정체기를 맞았다. 이른바 ‘3만 달러 함정’은 단순한 소득 정체가 아니라, 해외에서 성장기회를 포착하던 혁신과 도전정신이 사라진 결과이다.

한국경제의 올해 예상 성장률은 0.9%, 물가상승률은 2%로,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권력을 잡는 데, 선거에 이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붕당사고로 ‘적들의 모임’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서서히 ‘정체의 덫’, 3만 불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한국 사회의 성장은 둔화되고, 청년 세대는 기회보다 절망을 말한다. 캄보디아 사태나 청년들의 높은 자살률이 이를 보여준다.

안전을 추구하는 사회일수록 위험을 더 두려워하고, 위험을 두려워하는 사회일수록 미래를 잃는다.

한국경제의 희망은 언제나 해외 기회 포착에서 만들어졌다. 석유위기 때는 중동에서, 1980년대에는 종합상사를 통해, 2000년대에는 중국 진출을 통해 성장기회를 포착하며 한강의 기적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3만 불 시대에 진입한 한국 사회와 경제는 ‘절실함’ 대신 ‘안일함’을 택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역사는 절실함에서 만들어지고, 절실함의 적은 안일함이다”라고 했다.

2024년 2%의 경제성장률 중 95%는 수출이 기여했다. 이제 해외 기회 포착을 위해 한국 사회는 ‘경쟁의 끝, 협력의 시작’을 선언해야 한다.

프랑스 대혁명기에도 싸움의 끝은 화합이었다. 처형의 광장이었던 ‘루이 15세 광장’은 이름을 ‘콩코르드(Concorde, 화합)의 광장’으로 바꾸었다.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혁명이 시작되었고, 1790년에는 바스티유 감옥의 벽돌로 ‘콩코르드(화합)의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793년, 그곳은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장소이기도 했지만, 혁명 중이던 1795년에는 ‘콩코르드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혁명의 끝은 갈등이 아니라 화합과 포용이었다.

이런 붕당정치에 칼을 든 지도자가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경쟁의 종말, 갈등의 종말, 협력의 시작’을 선언하고자 했다. 2006년 5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총리, 산자부 장관, 30대 그룹 회장,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 대표자들을 청와대로 불러모았다. 그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가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세균 장관, 이건희 회장, 구본무 회장, 최태원 회장, 허창수 회장 등 38명이 참석했다. 이날 필자인 내가 발제를 맡았다. 발표 제목은 6개월간 밤새 연구한 ‘대한민국 상생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자’ 였다. 핵심 주제는 ‘경쟁의 종말, 협력의 시작, 생태계를 만들자’는 선언이었다.

이때 대한민국 경제에 ‘생태계(Ecosystem)’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당시 출간된 김영사의 '상생경영'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상생은 정치 바람을 타면서, 선거가 끝나자 사라지고 말았다.

철학이 없는 행동은 흉기이고, 행동이 없는 철학은 가치가 없다. 철학과 이론이 없는 정책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동반성장’이라는 이름만 남고, 철학은 사라졌다. 지금의 동반성장정책은 ‘동반’만 있고 ‘성장’이 없는 정책이 되었다.

‘동반하면 성장해야 한다’는 강제성과 부담 때문에, 대기업들은 해외 진출 시 협력업체와의 동반진출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결국 대기업은 단독으로 나가고, 협력업체는 혼자 남게 되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국내에 머무르며 ‘갈라파고스화’가 심화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제조 중소기업 수는 약 4만여 개가 줄었다. 해외 성장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한국기업은 앞으로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한국 중소벤처 정책의 한계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끝없이 줄어드는 지금, 해외의 기회를 포착하고, 해외 700만 동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통합하는 ‘국가개조 프로젝트’ 가 필요한 이유이다.

저자 소개

김기찬 교수는 현재 인도네시아 프레지던트대학교의 국제총장이자, aSSIST 석좌교수,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이며, 세계중소기업학회(ICSB) 회장으로 활동 중인 대한민국 대표 경영학자다. 기업가정신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통합한 사람중심 경영 철학의 선구자이자, K-Entrepreneurship의 세계화를 이끄는 학계·실무계의 권위자다.
서울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도쿄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MIT 국제자동차프로그램(IMVP) 연구위원, 조지워싱턴대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경제분과 위원장,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이사,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정부 자문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에너지 등 대기업의 자문교수 및 현대모비스·홈앤쇼핑·킨텍스 사외이사 등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산학연 허브형 리더로 평가받는다. 윤경ESG포럼 공동대표, 한국인도네시아경영학회 회장으로서 아세안과의 경영교육 및 교류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2018), '이토록 신나는 혁신이라니'(2019), '플랫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2015) 등이 있다. 다수의 국내외 수상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겨울 연금송 올해도…첫눈·크리스마스니까·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해시태그]
  • 대통령실 "정부·ARM MOU 체결…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 양성" [종합]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5,641,000
    • -2.33%
    • 이더리움
    • 4,643,000
    • -2.56%
    • 비트코인 캐시
    • 846,500
    • -2.53%
    • 리플
    • 3,067
    • -5.02%
    • 솔라나
    • 203,600
    • -4.73%
    • 에이다
    • 642
    • -3.75%
    • 트론
    • 424
    • +1.68%
    • 스텔라루멘
    • 371
    • -2.11%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570
    • -2.33%
    • 체인링크
    • 20,980
    • -4.07%
    • 샌드박스
    • 217
    • -4.8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