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임성호의 정치원론] 남용돼 무뎌진 정치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

입력 2025-10-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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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반공기치·내란척결에 상대 적대시
국민 불안감 키우고 정치는 퇴행화
사법 조롱·겁박은 민심이반 부를 뿐

명약도 남용하면 큰일 난다. 전가의 보도도 너무 휘둘러대면 무뎌져 정작 겨냥한 건 못 베고 애꿎은 주변만 다치게 한다. 정치세력의 요긴한 공격 책략도 무분별하게 쓰면 결국 역풍만 일으킨다.

양극화가 위험 수위에 달한 우리 정치를 보자. 한쪽은 반대쪽을 반공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공격한다. 특히 정권을 잡고 있던 과거에 이 책략에 과잉 의존했다. 반대편 정치인은 물론 사회 인사와 시민의 비판을 용공·친북 논란으로 억눌렀다. 분단과 전쟁의 아픈 상처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이 책략은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용공·친북을 너무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아무 때나 끄집어내 썼다. 국민은 진부함을 느꼈고 무감각해지며 심지어 반발심마저 갖게 됐다. 더욱이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 책략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됐고 이젠 더 이상 정권 유지나 획득의 비방(秘方)이 되지 못한다.

다른 한쪽도 상대방을 공격할 때 전가의 보도를 쓴다. 과거 야당 때엔 독재 낙인으로 집권 세력에 대항했다. 정말 독재로 억압받던 국민으로부터 당연히 호응을 얻었다. 그후 집권을 하자 잔재·적폐 청산이라는 기치를 모든 영역에서 올리며 반대 진영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청산에만 매달리다 보니 건전한 정책 비판마저 수구 세력의 반발이라고 걷어찼다. 중도층을 비롯한 상당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을 만큼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이 상황은 친위 쿠데타 불발, 윤석열 대통령 탄핵·파면, 이재명 대통령 집권 등 격변이 이어진 현 정국에서 더 극렬해졌다. 이젠 상대편을 싸잡아 내란 동조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으로 적대시하게 된 것이다.

요즘 여권, 특히 당 지도부를 이룬 강경 여권은 야당 정치인은 물론 공무원, 언론인, 학자, 일반 시민도 자기편이 아니면 내란 세력인 양 매도한다. 사법 판결마저 정권에 불리하다 싶으면 즉각 사법부까지 정치판으로 끌어내 내란 척결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이댄다. 그러나 과거 반대편의 과잉 반공 프레임이 역효과를 냈듯이, 과도한 내란 척결 프레임도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고 결국 반발·불신·저항을 확산시키는 역풍을 일으킨다. 대법원장을 국회로 불러 피의자처럼 꾸짖고 ‘조요토미 희대요시’ 합성 사진으로 비열하게 조롱·겁박하는 모습이 건전한 상식을 지닌 국민에게 어떤 느낌을 주겠는가. 어리석고 사악해 지지자들마저 대부분 등 돌린 전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응징만 부각하며 중도적·성찰적 비판까지 다 내란 프레임에 넣으려 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정작 국가의 안위와 민생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국내외 사안들엔 잘 대처하지 못하면서 내란 이슈에만 집중할 때 민심이 따라오겠는가.

여(與)든 야(野)든 정파 진영의 정치인들이 반공이든 내란 척결이든 하나의 기준만으로 자기 진영 외부를 싸잡아 공격하는 이유는 무얼까? 지적(知的) 협소함이나 천박함 때문에 그럴 만큼 그들이 바보는 아니다. 감정적 무절제함도 그들의 출세 이력을 볼 때 아닌 것 같다. 집단 내 강경 입장이 온건 입장보다 우위에 서기 쉽다는 조직 논리도 일부 작용하겠으나 일관되게 무리한 전가의 보도 사용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정파적 계산에 의한 책략으로 보는 게 맞을 듯싶다. 상대편에 커다란 부정적 낙인을 찍어 아예 정통성마저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무력화시키고 자기네의 모든 결함과 책임을 덮어버리려는 책략일 것이다.

그런 책략이 결국엔 역효과를 낸다는 점은 우리 정치의 과거와 현재가 확인해 준다. 유권자는 남용되는 정치권 전가의 보도에 식상함을 느낄뿐더러 정파적 책략에 환멸감·불신감을 깊게 한다. 마구 써서 무뎌진 칼로 반대쪽 정파와 건전한 비판 세력을 통으로 공격할 순 있겠으나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순 없다. 전가의 보도는 정말 썩은 부분만 정교하게 치는 데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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