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네스티 “정부가 묵인…경찰 개입도 보여주기식”
거대 범죄단지 실질적 배후에 중국계 조직

캄보디아가 범죄 소굴로 전락하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 나라는 한때 관광, 부동산 투자업 등을 앞세워 성장 신화를 써내려갔으나 이제는 국가가 범죄를 묵인·조장하는 범죄 친화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19일 태국 매체 네이션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에서는 사이버 사기를 주축으로 한 글로벌 범죄산업이 세력을 키우면서 그 수익 규모가 합법 산업을 위협하거나 이미 추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 싱크탱크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2023년 기준으로 사기 산업이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팽창했다며, 그 규모를 연간 125억 달러(약 18조 원)로 추정했다.
인권·안보 전문가 제이컵 심스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초빙연구원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USIP 등은 최근 연구에서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전역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사기조직들이 전 세계 피해자들로부터 연간 500억~750억 달러를 갈취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이러한 범죄 생태계의 중심에는 사기, 납치, 인신매매 등이 있으며 많은 범죄 단체가 캄보디아 경제특구(SEZ) 곳곳에서 대규모 사기 사업을 운영 중이다. 피해자들은 가짜 일자리 제안에 속아 고도의 보안시설에서 감금돼 폭력의 위협 속에서 온라인 사기에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전역 16개 지역에서 53개 사기산업 단지와 45곳의 의심스러운 장소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현지 조사 기관인 캄보디아 인신매매 근절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적으로 최소 350개의 사기 단지가 운영되며 약 15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분석가들은 이처럼 거대한 범죄 조직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 캄보디아의 강력한 정치·경제 엘리트들 사이의 체계적인 부패와 공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단체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은 캄보디아 정부가 이러한 범죄 행위를 묵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단속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지만 매우 효과적이지 않으며, 이는 경찰 부패와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몬세 페러 엠네스티 지역 연구 책임자는 “캄보디아 당국은 사기 조직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이를 계속 유지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며 “우리의 연구 결과는 범죄가 번성할 수 있었던 국가 실패의 패턴을 드러내며 정부의 동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캄보디아 정부는 이러한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경찰 개입 역시 단순히 ‘보여주기식’에 불과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실질적 배후에는 중국계 자본과 인물들이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영국은 중국계 천즈 회장이 이끄는 캄보디아 대표 기업 프린스그룹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 법무부는 150억 달러의 가상자산을 몰수하기 위한 소송도 제기했다. 중국에서 태어나 2014년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한 그는 정계와 유착해 사업을 급속히 확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매체 캄보디아데일리에 따르면 천즈 회장은 현재 행방을 알 수 없어 실종설이 제기되고 있다.
심스 초빙연구원은 “개혁 가능성이 작고 현 상황이 초래하는 안보상 파급력이 큰 만큼 국제사회가 피해 최소화를 중심으로 한 공동 대응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