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를 다시 세우다, 포용 성장의 조건 [공존의 붕괴, 양극화 시대⑤]

입력 2025-10-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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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10-16 17:35)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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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는 더 이상 경제의 언어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삶의 간극이 벌어지며 불평등은 제도의 균열로 번지고 있다.
정치의 언어는 타협이 아닌 대립으로, 경제의 온도는 계층에 따라 극단으로 갈라졌다. 부와 일자리, 교육과 기회가 양극단으로 치닫자 중산층은 붕괴되고 청년 세대는 계층 이동의 희망을 잃었다. 공존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이념보다 감정이 정치의 기준이 되고 사회는 협력 대신 불신으로 굳어갔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안에서도 최소한의 공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부의 집중이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극화는 이제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다. 성장과 신뢰, 민주주의의 토대를 동시에 흔드는 시대의 균열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본지는 그 균열의 원인을 진단하고 다시 공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부의 쏠림은 체제의 균열로, 신뢰의 단절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번졌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더 이상 ‘소득의 격차’가 아니다. 산업과 세대, 지역과 계층의 모든 경계가 갈라지며 사회의 균열은 제도의 균열로 확장됐다. 앞선 네 차례의 진단이 현실의 무게를 보여줬다면 마지막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 균열을 어떻게 다시 잇고, 공존의 질서를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해답은 복잡하지 않다. 조세와 복지, 교육과 노동, 정치 전 영역에서 ‘포용의 질서’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효율보다 공정이, 대립보다 연대가 앞설 때 한국은 다시 앞으로 걸을 수 있다. 양극화의 균열은 조세와 복지의 왜곡에서 비롯됐다. ‘성장 우선’의 기조 아래 감세가 반복되며 사회적 신뢰는 서서히 무너졌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조세 정의는 불평등 완화의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지만, 우리는 부자 감세를 성장의 해법으로 착각해왔다”며 “이제는 조세를 공동체 신뢰의 회복 장치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감한 부자 증세와 복지 확충이 병행돼야 사회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복지를 단순한 분배가 아닌 ‘성장의 재설계’로 본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며 “누진적 조세 강화와 사회안전망 확충이 장기 성장의 토대를 복원한다”고 설명했다. 또 “자산과 금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부의 순환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세 정의와 복지 확장은 결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신뢰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복지의 확장은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조세가 분배의 기초를 다진다면 교육은 그 위에 기회의 사다리를 놓는 일이다. 김영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세대 간 자산 축적 격차가 이미 구조화된 상황에서 교육은 유일한 탈출구”라며 “능력주의 원칙은 유지하되 경제적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통신대 로스쿨 같은 공공형 진입로를 열어야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AI를 사교육의 도구가 아닌 공공 학습 인프라로 전환해야 한다”며 “공공기관 중심의 AI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누구나 기술 학습 기회를 얻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교육을 ‘계층 이동의 실질적 사다리’로 돌려놓기 위해선 재정·복지·노동 개혁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와 조세가 단절된 채 작동하면 계층 이동은 불가능하다”며 “교육은 사전적 기회균등의 장치, 노동은 사후적 보상의 장치로 함께 맞물려야 한다”고 짚었다.

노동 개혁의 핵심은 신뢰 회복이다. 비정규직이 전체의 38%를 넘는 현실에서, 같은 일을 하고 절반의 임금을 받는 구조는 사회적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가 공정한 노동시장의 출발점”이라며 “이 원칙을 지키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정부 재정 부담 없이 실효성 있는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으로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연대 정신을 들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하청 노동자와 협력하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공허하다”며 “상층이 일부를 양보하고 하층이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대기업 중심의 임금·복지 체계가 중소기업과 하청 근로자에게 환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노동시장 양극화 해법으로 산업별 상생 모델을 제시했다. “조선업처럼 원·하청 간 임금 격차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노무비 에스크로, 하청 보호 조항, 업종별 공제회 매칭 지원 같은 제도적 장치를 결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치의 복원 없이는 다른 개혁도 설 자리가 없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적대 정치를 구조화했다”며 “정치가 갈등의 생산자가 아니라 조정자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 정수 확대와 양원제 도입, 연동형 비례대표제 강화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서 교수는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정책을 논의하는 숙의 거버넌스가 제도화돼야 한다”며 “포용의 질서가 다시 서야 한국 사회의 균열도 메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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