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일관성 유지·구조 개혁 나서고
규제철폐·대학육성⋯기업 뛰게 해야

한국 경제의 성장 능력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2000년대 초만 해도 5%대에 달했던 잠재성장률이 최근에는 2% 내외로 급감했다.
이 추세라면 2030년대에 1%대로, 2040년대는 최악의 경우 감소세로 추락할 것이 우려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가파르다. OECD 회원국 평균 잠재성장률은 2017년 1.99%에서 2026년 1.80%로 하락하는데 한국은 같은 기간 3.00%에서 1.98%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이고 빠른 하락은 한국이 지닌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능력이 급속히 약화됨을 뜻한다. 그 결과 1990년대 말 이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재임 기간 중 10년 평균 추세 성장률인 장기성장률이 매번 1%포인트씩 주저앉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6%대였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떨어져 최근에는 1%대까지 내려왔다. 한국 경제는 향후 5년 안에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자칫 저성장 기조에서조차 벗어나 역(-)성장기로 전락할 위태로운 긴급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잠재성장률 급락의 가장 큰 문제는 민생 최대 현안인 고용과 소득 증대를 갈수록 힘들게 하는 데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산업 생산 증가 여력이 낮아지는 것을 뜻하며 이는 그만큼 고용 증가를 가로막는다. 고용량뿐만 아니라 질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산업 생산 부진으로 기업 수익성이 떨어지면 임금 상승이 힘들어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 저하는 새로운 성장 원천과 동력을 확보하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신규 고용 여력을 만들지 못해 노동 시장에 새로 유입되는 청년들 채용을 매우 어렵게 한다.
성장 활력 상실로 나타나는 제일 심각한 우려는 극도로 깊어지는 경제 양극화 현상이다. 경제 평균 1%대의 저성장은 경쟁력이 살아있는 소수 산업 분야와 대기업을 제외한 여타 부문은 모두 마이너스 성장 상태에 빠져 있음을 말한다. 산업별 기업규모별 소득 양극화 심화는 계층 간 갈등과 정치적 인기영합주의를 부추긴다. 이는 사회 통합을 가로막고 국가 재정 자원을 낭비토록 해 성장잠재력을 더욱 낮추는 악순환 구조를 고착시킨다.
다행히 성장잠재력 하락의 근본 원인과 대책은 이미 충분히 제시되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등과 같은 정부와 민간 연구기관들은 예전부터 성장잠재력 약화를 우려하고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 왔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 추세에 맞추어 노동 시장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기업 투자를 적극 유인하는 한편 신기술 신사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함을 끊임없이 제언하고 있다. 각 정부도 이를 반영하여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잠재성장률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정책 방안들이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높이고 잠재성장률 확충을 위한 실현 주체들의 역량과 활력을 살려나가는 데 보다 더 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정책의 효율성을 올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성장잠재력 확충은 근본적으로 경쟁력과 생산성이 낮아진 낡은 산업 구조와 경제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라 장기간이 소요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를 바꾸고 지원 대상을 교체하면 성장 능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잠재성장률은 신산업과 신사업 창출을 통해 확충된다. 이를 이루는 핵심 주체는 기업이다. 요즘 국내 기업들은 주력 산업의 성숙화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AI 확산 등 과학기술 환경의 급변, 관세 급등 등 자유무역체제 약화, 중국 부상 등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사면초가 상황에 놓여 있다. 기업의 모험적이고 창의적 투자를 통한 성장을 가로막는 각종 행정·금융·세제상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여 기업들이 위기 극복의 활로를 찾도록 도와야 한다.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국가의 신지식과 신기술 창출을 주도할 인재 양성 역할을 담당하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개발 능력을 적극 키워야 한다. 한 나라 성장 능력은 국가의 지력 수준을 결정하는 대학들의 경쟁력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국 대학 경쟁력은 미국, 중국, 일본 등 우리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대학들이 세계 최고 대학으로 도약하도록 대학 지원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부, 기업, 대학이 환상적인 유기적 협력 체제를 이루어 잠재성장력 고갈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