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대중 수출, 대내 정치이슈, 한미 통화정책, 서학개미 등도 지켜볼 변수
연말까지 1300원대에서 1460원 사이 등락할 듯

원·달러 환율 상승세(원화 약세)가 가파르다. 추석 연휴로 대표되는 긴 연휴 이후 불과 이틀만에 26원 가까이 치솟으며 1425.8원을 기록,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그러잖아도 환율은 연휴 직전 외환위기 당시나 볼 수 있던 빅피겨(big figure) 1400원을 넘긴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급등세를 ‘정치·외교 변수와 실수요 요인이 결합한 복합 현상’으로 진단하면서도, 추가 상승 압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다만, 한미 관세협상과 이달말 열리는 경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이벤트 결과에 따라 연말 환율 흐름이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계했다.

13일 전문가들은 최근 원·달러 급등을 한미 관세협상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에다, 긴 연휴 사이 벌어진 프랑스 및 일본 정치 리스크, 미·중 무역갈등 재점화가 겹친 결과로 해석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미 관세협상 교착으로 관세율이 높아지고, 프랑스 정치 불안 등으로 유럽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등 외부 요인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미 관세협상은 3500억달러 투자금의 지불방식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선불 내지는 100% 현금출자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5% 수준의 현금출자와 나머지는 보증 방식으로 맞대응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예산안 합의 불발로 임기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던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의해 재임명됐고, 일본에서는 자민당 신임 총재로 다카이치 사나에가 당선됐으나 공명당이 연립정권에서 탈퇴하면서 아베노믹스 2.0이라 불리던 확장정책의 추진 동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여기에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에 맞서 다음달 1일부터 중국에 현 관세에 더해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혀 글로벌 무역 긴장을 재점화했다. 다만, 그는 이후 중국과 관련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것이 잘 진행될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유화 메시지를 내놔 진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요인들이 원·달러 환율에 상당부분 반영된 만큼 추가 급등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환율이 짧은시간내 급등한 만큼 외환당국의 개입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날 외환당국은 지난해 4월16일 이후 1년반 만에 구두개입에 나섰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외환당국이 1년 반 만에 구두개입에 나선 만큼 관리 의지는 명확하다”며 “지금 환율 수준은 사실상 최악의 요인들이 모두 반영된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달말로 예정된 APEC 정상회의가 향후 환율 방향을 가를 분수령으로 꼽았다. 하건형 이코노미스트는 “궁극적으로는 관세 협상 진전이 시장 심리를 결정할 것”이라며 “환율의 진정 시점은 외교 이벤트의 결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APEC 정상회의 전후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고, 협상이 진전될 경우 환율이 20~30원 하락할 수 있다. 반대로 합의 실패 시 일시적으로 1450원을 재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도 “3500억달러 선투자 요구는 현실성이 낮아 협의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협상 지속 자체가 불확실성 완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APEC에서 미·중 간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양국간 합의는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겠지만, 한미 협상은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원·달러 환율 급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중국은 카드가 많고, 트럼프는 내년 중간선거를 대비해야 하는 만큼 미·중간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엔) 타결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한미간 협상은 미국이 양보해주지 않는 이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년에 최대 1000억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것이 국내 상황이다. 또, 한국이 주장하는 방식도 특수목적법인(SPC)이 대출을 받을 때 정부가 보증을 서는 방식인지, 우리가 대출을 받아 SPC에 빌려주는 방식인지 알 수 없다. 현 상황에서 이를 모르기 때문에 타결 여부를 예측하긴 어렵다”면서도 “한미 통상협상이 (끝내) 불발될 경우 원·달러 환율은 큰 폭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지켜볼 변수로 대미·대중 수출, 유럽의 철강관세, 세금 문제 등 대내 정치이슈, 한미 통화정책, 서학개미 등을 꼽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