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300조 시대, 영화예산 확대 속 소외받는 독립예술영화
"독립영화, 산업 저변 확장하고 새로운 인재를 배출하는 토대"
내년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이 크게 늘었지만, 독립예술영화 지원만은 3년 연속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K콘텐츠 육성’을 내세우면서도 산업의 뿌리인 예술영화 생태계에는 등을 돌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내년 영화발전기금 중 독립예술영화 지원 예산은 총 223억8000만 원으로 올해(230억1500만 원) 보다 6억3500만 원 줄었다. 2023년(336억8500만 원)과 비교하면 약 30% 감소한 수치다.
반면 전체 영화 예산은 1498억 원으로 올해보다 80.8%(669억 원) 급증했다. 증가분의 대부분이 상업적 색채가 짙은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 등으로 편중됐다. 산업 전반의 다양성을 떠받치는 독립예술영화는 사실상 ‘홀대’ 받은 셈이다. 이는 K콘텐츠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기조와도 엇박자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정부의 영화 관련 예산이 1498억 원으로 올해 대비 669억 원(80.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문체부는 "이번 예산안은 한국영화 회복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영화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며 예산 편성 경위를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는 40억~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중예산 영화 지원 부문'이 2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100% 증액됐을 뿐이다. 영화 산업의 씨앗 역할을 하는 독립예술영화 지원 예산 규모는 오히려 축소된 것이다.

전체 영화 예산 규모가 확대된 상황에서 특정 분야만 삭감된 것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문제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정부가 K콘텐츠 육성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토대가 되는 독립예술영화 지원을 축소해 산업 생태계의 뿌리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조치라는 평가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문화는 곧 산업이며 일자리와 직결되는 영역”이라며 “창작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독립예술영화 지원을 줄이는 것은 정책 기조와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예산 상업영화만 키워서는 시장 다양성이 유지될 수 없다”며 “신진 창작자의 창작 기반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콘텐츠 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계 예산 삭감은 윤석열 정부 들어 심화했다. 특히 한국영화의 요람 역할을 하는 서울독립영화제 예산의 경우 2023년 3억7000만 원에서 2024년 2억9600만 원으로 줄었고, 올해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이에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서독제 집행위원회를 비롯한 영화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영화인 8000여 명이 서명에 동참하며 예산 복원을 촉구했고,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관련 논의가 다시 추진됐다. 결국 올해 7월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서울독립영화제 몫의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4억 원이 포함되면서 예산이 되살아났다.
양문석 의원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봉준호ㆍ박찬욱 감독도 독립예술영화로 시작한 만큼 한국 영화계에서 독립예술영화가 갖는 함의가 크다"라며 "관객들과 만나는 경로가 영화관에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확대되는 등 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독립예술영화 유통지원분에 대한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을 갈수록 축소하면서 작품의 질적 하락 역시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파수꾼'(2011ㆍ윤성현), '우리들'(2016ㆍ윤가은), '벌새'(2019ㆍ김보라)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독립예술영화 명맥이 최근 와서 끊어진 것.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한국 독립예술영화 흥행 1위 작품은 △2020년 '기기괴괴 성형수' △2021년 '더 박스' △2022년 '그대가 조국' △2023년 '문재인입니다' △2024년 '건국전쟁' 순으로 나타났다.
'기기괴괴 성형수'와 '더 박스'를 제외하면, 최근 3년간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들은 모두 정치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였다.
특히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개봉한 독립예술영화 중 흥행 10위권에 오른 한국 작품은 '퇴마록'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두 편뿐이다. 이 가운데 '퇴마록'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사영화로는 사실상 한 편만이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독립예술영화는 상업적 흥행보다 작품성과 다양성에 방점이 찍힌다"며 "시장 논리로만 보면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영화는 영화 산업의 저변을 확장하고 새로운 인재를 배출하는 토대이기도 하다"며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지원을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