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언어는 타협이 아닌 대립으로, 경제의 온도는 계층에 따라 극단으로 갈라졌다. 부와 일자리, 교육과 기회가 양극단으로 치닫자 중산층은 붕괴되고 청년 세대는 계층 이동의 희망을 잃었다. 공존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이념보다 감정이 정치의 기준이 되고 사회는 협력 대신 불신으로 굳어갔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안에서도 최소한의 공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부의 집중이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극화는 이제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다. 성장과 신뢰, 민주주의의 토대를 동시에 흔드는 시대의 균열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본지는 그 균열의 원인을 진단하고 다시 공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격차는 균열로 번졌다. 소득·자산의 불평등이 산업·노동·정치·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며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성장 동력은 식고, 민주주의의 토대는 흔들리고 있다.
무너진 중산층이 이를 웅변한다. 1990년대 70%에 달했던 중산층 비중은 최근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부동산·금융자산이 상위 계층에 쏠리면서 세대 간 자산 격차가 벌어졌고 청년은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었다. 막힌 계층 이동은 세대·계층 간 불신을 키워 사회 갈등의 점화 장치가 된다.
12일 통계청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10%(연평균 소득 2억 원) 가구가 전체 순자산의 44.4%를 차지했고, 하위 50%(1000만 원)는 9.8%에 그쳤다. 자산 격차 15배, 소득 격차는 20배에 달했다. 부의 집중이 구조화되며 ‘노력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 일상이 됐다.
산업 간 온도 차도 크다.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같은 초격차 업종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지만, 조선·철강·내수 제조업은 정체 구간에 갇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재벌 중심 성장전략이 대기업-중소기업 종속 구조를 고착시켜 산업 불균형을 심화시켰고 그 여파가 지역·고용 격차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더 단단해졌다. 전체 취업자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이며,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다. 안정된 일자리는 여전히 대기업 남성에게 집중돼 있다. 반면 여성·청년·중소기업 근로자는 저임금과 불안정 속에서 생애 전반의 ‘신분 격차’를 감내한다.
교육과 기회의 불평등은 계층 고착을 더욱 굳힌다. 상위층은 사교육·자산 투자로 기회를 선점하지만 중하위층은 생계비 부담에 기본 역량을 쌓을 여력조차 쉽지 않다. 급등한 주거비는 청년의 자산 형성을 가로막아 ‘노력의 보상 메커니즘’을 무력화한다.
삶의 간극이 넓어질수록 정치·사회 불신은 커졌다. 정쟁은 일상이 됐고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이 공동체를 잠식했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자리를 진영 대립과 거리 정치가 채우는 악순환도 깊어졌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산성과 부가 높은 부문에만 과실이 집중되면서 성장 잠재력과 민주주의 내구성이 함께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양극화의 파고는 국경 밖에서도 확인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은 감세와 이민 규제 강화로 빈부 격차와 진영 대립이 다시 격화됐다. 프랑스에서는 복지 축소와 물가 급등에 대한 반발로 ‘모든 것을 멈춰라(Block Everything)’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양극화가 단순한 분배의 문제를 넘어 성장·민주주의·신뢰를 동시에 갉아먹는 한국 사회의 최대 구조적 위기라고 경고한다. 경제적 성장의 동력과 민주주의의 내구성, 사회적 신뢰의 기반이 함께 흔들리며 국가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