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아침 차례상을 앞에 두고 가장 많이 오가는 질문은 ‘지방을 어떻게 써야 하나’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지만 막상 작성하려 들면 순서와 표현을 놓쳐 다시금 도움을 찾는 이들이 많다.
지방(紙榜)은 제사를 모시는 고인을 대신하는 상징물이다. 원래 사당에는 신주(神主)가 모셔지지만 신주가 없을 경우 흰 종이에 고인을 기려 적어 올린다. 그래서 지방은 흔히 ‘임시 위패’라 불린다. 보통 폭 6㎝, 길이 22㎝ 정도의 종이를 사용하며 전통적으로는 한자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글로 쓰는 경우도 많아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문구가 바로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다. 지방의 작성 순서는 이 문구 안에 모두 담겨 있다. 첫머리의 ‘顯(현)’은 고인을 드러내고 모신다는 뜻이다. 이어 고인과 제사를 지내는 이와의 관계, 고인의 지위, 이름, 마지막으로 ‘神位(신위)’를 붙이면 완성된다.
예컨대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신다면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 어머니의 경우에는 ‘顯妣孺人○○○氏神位(현비유인○○○씨신위)’가 된다. 부모님 두 분이 함께 돌아가셨을 경우에는 하나의 지방에 나란히 적는데, 아버지는 왼쪽, 어머니는 오른쪽에 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부모 이상의 조상도 같은 원칙을 따른다. 남성을 왼쪽, 여성을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이 전통이다.
부모·조부모뿐 아니라 형제, 배우자, 자식 등 다른 가족을 기릴 때도 관계에 따른 표기가 다르다. 아버지는 ‘考(고)’, 어머니는 ‘妣(비)’라 쓰며, 할아버지는 ‘祖考(조고)’, 할머니는 ‘祖妣(조비)’가 된다. 증조부모 이상은 앞에 ‘曾(증)’이나 ‘高(고)’를 덧붙인다. 남편은 ‘顯壁(현벽)’, 아내는 ‘亡室(망실)’이나 ‘故室(고실)’이라고 적는다. 형은 ‘顯兄(현형)’, 형수는 ‘顯兄嫂(현형수)’, 동생은 ‘亡弟(망제)’ 또는 ‘故弟(고제)’, 자식은 ‘亡子(망자)’ 또는 ‘故子(고자)’로 표기한다.
또 조상이 생전에 벼슬을 지냈다면 관계 뒤에 관직명을 적고 여성이면 남편의 품계에 따라 나라에서 내린 호칭을 쓴다. 벼슬이 없는 경우라면 남자는 ‘學生(학생)’, 여자는 ‘孺人(유인)’이라고 적는 것이 원칙이다.
관계와 지위, 호칭을 쓴 뒤에는 고인의 이름과 성씨를 적는다. 남성은 뒤에 ‘府君(부군)’을 붙이고, 여성은 본관과 성씨에 ‘氏(씨)’를 덧붙인다. 마지막은 반드시 ‘神位(신위)’로 끝맺는다.
이처럼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 지방은 ‘顯(현) → 관계 → 지위·호칭 → 이름·성씨 → 神位(신위)’ 순서로 정리된다. 그래서 초보자라 해도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 한 문구만 기억하면 구조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지방은 단순한 종잇조각이 아니다. 고인의 혼을 대신하는 상징물이기에 제사를 마친 뒤 그대로 두지 않고 반드시 소각하는 것이 관례다. 불에 태워 보내며 제사의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