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저녁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본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멈춰 서며 국가 전산망이 사실상 마비됐다. 전체 시스템의 3분의 1 이상이 중단된 것으로, 주요 대국민 서비스까지 먹통이 되면서 충격이 커지고 있다.
27일 행안부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은 26일 오후 8시 15분쯤 전산실 내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과정에서 불꽃이 튀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UPS는 서버에 전기를 끊김 없이 공급해주는 장치다.
불이 난 배터리는 58V 리튬배터리로 12개씩 들어가는 캐비닛 16개 중 절반가량인 8개가 불에 탄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 배터리 상당수가 소실되며 전산실 내부 열기가 급격히 높아졌고, 항온항습기가 작동을 멈추자 서버 과열 우려가 커졌다. 이에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 내 647개 시스템 전원을 긴급 차단했다.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을 비롯해 광주·대구센터에서 총 1600개 정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멈춘 647개는 모두 대전 본원에 집중돼 있어 정부 전체 서비스의 3분의 1 이상이 동시에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행정안전부는 27일 브리핑에서 “서버 등 핵심 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차단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 국가 전산망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데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은 “항온항습기 고장으로 서버 과열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시스템을 멈췄다”며 “우체국 금융·우편 등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서비스부터 신속히 복구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항온항습기 복구 작업을 최우선으로 진행 중이다.
다만 리튬배터리 화재 특성상 ‘열폭주’가 발생해 완전 진화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27일에도 전산실 내부 열기가 빠지지 않아 소방 안전 점검조차 끝내지 못했으며, 피해 범위 파악과 복구 착수조차 늦춰지고 있다.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복구는 손상 정도에 따라 다르다”며 “열기가 빠지고 안전 점검이 끝나야 서버 재가동 시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로 세금 납부·서류 제출 기한 등을 연장하고 온라인 서비스 불능에 따른 대체 수단도 안내했다. 김 차관은 “민원 지연으로 국민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관련 기한을 정상화 이후로 연기하도록 조치했다”며 “재난문자를 통해 주요 서비스 중단 사실과 오프라인 창구·대체 사이트 활용을 알렸다”고 전했다.
특히 네이버 공지를 통해 대체 서비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전산망 마비 상황의 이례성을 보여준다.
정부가 전산망 장애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처음으로 위기상황본부를 가동한 데 이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대응 기구를 격상했다. 다만 국가 전산망 심장부가 정상 가동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은 이날 브리핑에 동석해 “화재 원인은 감식을 해봐야 알 것”이라며 “손상에 따라 (복구가) 바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있을 텐데 복구하면서 공개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어 “오늘 아침까지 화재 열기가 안 빠져 복구작업에 착수를 못 했다”며 “복구가 언제 끝날지는 열기가 빠지고 소방 안전 점검이 끝나고 서버를 재가동해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차관은 이번 정보시스템 장애에 따른 국민 불편에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번 장애로 인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큰 불편을 겪으신 데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장애를 신속히 복구하고 상황이 안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