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생산적 금융의 성패, 민간 모험자본에 달렸다

입력 2025-09-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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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조 원을 굴리는 ‘큰손’ 싱가포르 테마섹(국부펀드)은 지난 20년간 전통산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바이오·재생에너지에 재투자하며 글로벌 혁신 생태계를 견인했다.

세계 최대 공적연금 중 하나인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역시 안정적인 연금 지급이라는 본연의 임무와 함께 자산의 일부를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에 꾸준히 배분하며 신산업과 신기술에 자금을 공급하는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어떨까. 국내총생산(GDP)의 66%가 부동산에 매여있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로, 증권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손쉽게 수익을 챙겼고 위험 부담이 큰 혁신기업 투자는 늘 후순위로 밀렸다. 그 결과 국내 스타트업은 해외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정작 국내에서는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형적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추진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펀드의 절반은 정책금융기관이 책임지고 나머지는 민간에서 조달한다. 민간 자본이 단순히 보조자에 머무른다면 펀드는 허울에 불과하다. 정부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성장 동력은 민간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금융당국은 규제까지 걷어냈다. 은행 자금이 첨단산업으로 더 흘러가도록 주담대의 위험가중치(RW)는 높이고 주식 가중치는 낮췄다. 부동산 대출에 쏠린 자금 흐름을 신산업으로 돌리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투자 문화 그 자체다. 위험 회피 관행을 넘어 시장 스스로 모험자본을 키워내는 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만 자본이 부동산에 갇히지 않고 혁신 기업으로 흘러갈 수 있다.

모험자본의 가치는 기업을 살리는 수준을 넘어선다.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출발점이다. 국내외 벤처 사례를 보면, 초기 단계에서 위험을 감수한 자본이 뒷받침될 때 기업은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고 그 성과는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와 일자리로 이어졌다.

반대로 모험자본이 부재한 산업은 성장 동력을 잃고, 외국 자본에 의존하거나 해외로 무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모험자본은 단순한 자금 공급원이 아니라 산업 구조를 바꾸고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동력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처럼 국가 경제를 이끄는 주력 산업도 출발은 대부분 작은 기술기업이었다. 당시 과감히 투자한 자본이 없었다면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산적 금융의 성패는 민간 자본이 얼마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장기적 안목에서 혁신을 뒷받침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성장펀드가 단순한 관치펀드로 머무를지 아니면 민간 모험자본을 자극하는 마중물이 될지는 구체적 이행 과정에 달려 있다. 정부가 제시한 틀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스스로 기회를 찾고 책임을 지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정이 아니라 도전이다. 청년 세대가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 첨단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자본의 흐름이 부동산에서 혁신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 생산적 금융은 경제 정책의 수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다음 세대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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