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立秋)와 여름의 끝을 알리는 처서(處暑)가 지나며 본격적인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은 ‘가을 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리적 변화가 큰 계절이다. 일조량 감소와 기온 변화 등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분이 가라앉기 쉬워 이 시기에는 특히 우울증 관리가 필요하다.
계절 변화로 인해 우울감이 높아질 수 있는 가을에는 이미 높은 수준인 국내 정신건강 지표가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8.3명으로 OECD 평균(약 11명)의 두 배가 넘는다. 성인 우울증 평생 유병률도 8%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보다 높아 사회 전반의 정신건강 악화가 우려된다.
특히 아침마다 출근길이 힘겹고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다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직장인 우울증’의 신호일 수 있다. 실제로 한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80% 이상이 최근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직장인 우울증을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병’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되면 뇌 신경 기능의 불균형을 일으켜 우울감과 불안뿐 아니라 신체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고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우울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고 흥미가 사라지며 수면·식욕 변화, 피로감, 무가치감, 자살사고 등이 동반된다면 ‘주요 우울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이 경우 전문가 상담이 필요하다.
김현규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진단 기준에 미치지 않더라도 우울감은 업무 효율 저하, 대인관계 악화, 사고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 ‘아직 괜찮다’며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우울감을 줄이기 위해선 먼저 원인을 파악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 내 갈등, 업무 과중, 가족 문제,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혼자 감당하기보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주변에 그런 대상이 없다면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주의할 점은 우울하다고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울할수록 오히려 몸을 움직이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활동을 계획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주 3회 이상 30분가량의 규칙적인 운동은 우울감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면담과 심리검사를 통해 상태를 평가하고 인지행동치료·행동활성화치료·정신화 기반 치료 등 비약물적 치료를 시행한다. 필요할 경우 약물치료를 병행해 증상 악화를 막을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으로 일상 유지가 힘들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회복의 지름길”이라며 “정신건강은 신체건강만큼 소중하며 조기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