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수요는 지속…한국산 의존도 여전
美 규제 겹치며 ‘수출 리스크’ 상시화

중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구매를 전면 차단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또 한 번 충격이 가해졌다.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의 중국 사업이 직접 타격을 입겠지만,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중국 수요 불확실성’과 ‘미국 규제 압박’이라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최근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 대형 IT기업에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AI칩 ‘RTX 프로 6000D’의 시험과 주문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H20 칩 사용 제한을 검토했으나, 이번 조치로 범위가 확대됐다. CAC는 국산 AI칩 성능 검증을 거쳐 “국내 공급만으로도 수요 충족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런던에서 열린 행사에서 “중국 시장에 기여해왔기에 실망스럽지만, 미·중 사이에 더 큰 의제가 있다”며 “중국 사업은 이제 재무 전망에서 제외하라”고 애널리스트들에게 언급했다.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이 소식 직후 2% 이상 하락했다.
문제는 엔비디아의 AI칩이 대부분 고대역폭메모리(HBM)나 GDDR 등 첨단 메모리를 탑재한다는 점이다. RTX 프로 6000D는 HBM 대신 GDDR 메모리를 사용하도록 설계됐는데, 이번 금지 조치로 단기적으로 삼성전자의 GDDR7 공급 확대 기대에 변수가 생겼다. 중국향 물량 축소가 불가피한 가운데, 글로벌 게이밍 그래픽카드나 워크스테이션 수요가 이를 일부 흡수할 수 있지만 시장 전망은 불투명하다.
HBM의 경우, 중국이 엔비디아를 배제해도 수요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중국은 내년까지 AI칩 생산량을 3배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화웨이·캠브리콘 등 자국 업체가 앞장서지만, 첨단 학습·추론 서버에 필수적인 HBM은 여전히 기술 격차가 크다. 현재 글로벌 HBM 시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삼분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4 양산 준비를 완료하며 선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의 규제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 장비 반입을 ‘연례 승인제’로 묶어 관리 강화에 나섰다. 이는 공장 운영을 사실상 ‘현상 유지’ 수준에 가둬 두는 조치다. 증설과 업그레이드가 쉽지 않은 환경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수요가 있어도 수출 승인이라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며 “수요는 있는데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반도체 관세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자동차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경고는 삼성·하이닉스의 중국 공장뿐 아니라 미국 수출 전략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AI 투자 확대 속에 독점적 지위를 이어가면서도, 미·중 갈등 심화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를 상시적으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국산화 속도가 빨라지고는 있지만, HBM처럼 고도의 기술과 수율이 필요한 분야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회와 위험이 교차하는 ‘롤러코스터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